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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겸

한글지겸
한자志謙
유형인물
키워드금산사, 광명사, 종문원상집
시대고려 후기
출생1145년
입적1229년
시호정각국사(靜覺國師)
주요주석처금산사, 도봉사, 광명사, 화장사
고려 후기 선승으로 강종의 왕사이며 『종문원상집』의 편자
고려 후기의 선승으로 대선사와 강종의 왕사를 지냈고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을 펴냈다. 지겸(志謙, 1145~1229)의 자는 양지(讓之)이고, 전라도 영광 출신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인 전종회(田宗會)의 후손이다. 부친은 검교 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 전의(田毅)였다. 어릴 때 한 승려에게 “속세에서는 정착할 곳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출가의 뜻을 품었다고 한다. 11세 때 사충(嗣忠)에게 출가하였고, 이듬해에 금산사(金山寺) 계단(戒壇)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여 내전과 외전에 다 통달하였고, 언변에도 능하여 당시의 이름난 문사들이 그의 명성을 듣고 교류하기를 원했다. 1171년(명종 1) 승과(僧科)에 급제하였다. 이 무렵 삼각산에 갔다가 도봉사(道峯寺)에 머물 때 꿈에 산신이 나타나 “화상의 이름은 지겸인데 왜 지금의 이름을 쓰는가?”라고 하여 학돈(學敦)에서 지겸으로 법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1189년(명종 19)에 등고사(登高寺)에 주석하였고, 1193년(명종 23)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를 받았다. 1196년(명종 26)에 선사(禪師)가 되었고, 1199년(신종 2)에 욱금사(郁錦寺)로 옮겼다. 1204년(신종 7) 대선사(大禪師)에 올랐으며, 이후 여러 선회(禪會)에 초빙되어 명성을 크게 떨쳤다. 1208년(희종 4)에는 가뭄이 심하여 궁중 내불당(內佛堂)에서 기우제를 행했는데, 얼마 후 비가 내리자 화상우(和尙雨)라 불렀다. 강종(康宗)이 즉위하자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최충헌(崔忠獻)이 왕사(王師)로 추천하였다. 1213년(강종 2) 보제사(普濟寺)에서 책봉을 받았고, 궁궐에서 국왕이 사례(師禮)를 열어 정인(定印) 왕사라고 하였다. 이후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주석했는데, 최충헌은 정화택주(靜和宅主) 왕(王)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지겸의 제자로 들였다. 1217년(고종 4) 왕사 자리에서 물러나 경기도 장단 화장사(華藏寺)에 머물다가 1229년(고종 16) 7월 국왕과 최우(崔瑀), 송광사주(松廣社主)에게 편지를 보내고 세수 85세, 법랍 75년으로 입적하였다. 절의 서쪽 언덕에서 다비를 하고 등선산(登禪山) 기슭에 장사했으며, 정각국사(靜覺國師)로 추증되었다. 여러 선서(禪書)와 어록(語錄)에서 깨달음의 표상인 원상(圓相) 170칙을 뽑아 수록한 『종문원상집』을 펴냈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쓴 비문에서는 “말세에 진인(眞人)이 나와 도와 부합하고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얻어 생령(生靈)을 교화하니 바로 우리 국사이다. 국사는 무엇을 꾸미는 일이 없이 천성대로 이치대로 할 뿐이었으며, 식사도 바리때를 들고 서서 기다렸고 변변치 않은 밥과 멀건 국으로 여느 승려들과 똑같이 먹었다. 다만 불사(佛事)에는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과연 보살의 화신(化身)이로다.”라고 평가하였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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