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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형

한글승형
한자承逈
유형인물
키워드거사불교, 보조 지눌, 능엄경
시대고려 후기
출생1171년
입적1221년
시호원진(圓眞)
주요주석처봉암사, 금산사, 보경사
탑소재지보경사
비소재지보경사
고려 후기에 능엄선을 선양하고 국사로 추증된 희양산문의 선승
고려 후기 희양산문의 선승으로 이자현(李資玄)의 영향을 받아 능엄선(楞嚴禪)을 선양하였다. 승형(承逈, 1171~1221)은 속성이 신(申)씨, 부친은 통한(通漢)이며, 경상도 상주 출신이다. 3세 때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시어사(侍御史) 광한(光漢)의 집에서 자랐다. 7세에 운문사(雲門寺) 연실(演實)에게 의탁했고, 13세에 희양산문인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선승 동순(洞純)에게 출가하였다. 다음 해에 전라도 김제 금산사(金山寺)의 계단(戒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197년(명종 27) 봄에 보제사(普濟寺)의 선회(禪會)에 참석했다가 스승 동순이 입적하여 상을 치렀다. 그해 가을 광명사(廣明寺)에서 선불장(選佛場)이 열리자 명종이 특별히 명을 내려 참가시켰는데, 최우수로 합격하였다. 원래 명리(名利)에 뜻을 두지 않아서 명산을 유력했는데,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에서 보조 지눌(普照知訥)에게 법의 요체를 물은 데 이어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을 얻었다고 한다. 또 이자현(1061~1125)이 머물렀던 춘천 청평산(淸平山) 문수원(文殊院)의 유적을 탐방하였다. 이자현은 고려 최고 문벌 가문 인주(仁州) 이(李)씨 출신으로 선 수행에 전념한 거사(居士) 불교의 실천자였다. 여기에서 승형은 김부식(金富軾)의 동생 김부의(金富儀)가 비문을 쓰고, 이자현에게 배운 대감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이 글씨를 쓴 「진락공문수원기(眞樂公文殊院記)」를 읽다가, “『수능엄경(首楞嚴經)』이야말로 마음을 밝히는 지름길”이라는 문구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때 모든 현상이 환영(幻影)이며 마음이 끝없이 넓고 크다는 것을 깨달아 『능엄경』을 중시하고 선양했다고 한다. 1208년(희종 4) 왕명으로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주석하였고, 개경에서도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1213년(강종 2)에 삼중대사(三重大師)가 되었고, 1214년(고종 1)에 곽주사(郭住寺)에서 낙성법회를 열고 선사(禪師)의 승계를 받았으며, 이듬해 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이후 경상도 영일 보경사(寶鏡寺)에 주석할 때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설하여 도적들을 감화시켰다. 1220년(고종 7)에 희종의 넷째 왕자였던 경지(鏡智)를 출가시켜서 스승이 되었다. 칠장사(七長寺) 등에서 가뭄 때 법을 설하고 기도하여 비가 내린 일도 몇 번 있었다. 1221년(고종 8)에 능엄회(楞嚴會)를 개설하여 “정법은 만나기 어려우며 나 또한 오래 있지 않을 것이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하였다. 그해 7월 팔공산 염불암(念佛庵)으로 옮긴 후 9월에 입적하였다. 팔공산 남쪽 기슭에서 다비를 하고 탑을 세웠으며, 비는 보경사에 세웠다. 국사(國師)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원진(圓眞), 탑호는 혜공(慧空)이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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