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혼구 |
|---|---|
| 한자 | 混丘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일연, 삼국유사 |
| 시대 | 고려 후기 |
| 출생 | 1251년 |
| 입적 | 1322년 |
| 시호 | 보감(寶鑑) |
| 주요주석처 | 무위사, 영원사, 송림사 |
| 비소재지 | 영원사지 |
고려 말 일연의 제자이자 충숙왕의 왕사
고려 후기의 선승으로 충숙왕의 왕사였으며, 일연(一然)의 제자로서 『삼국유사』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혼구(混丘, 1251~1322)는 자는 구을(丘乙), 시호는 보감(寶鑑), 탑명은 묘응(妙應)이다. 속성은 청풍(淸風) 김(金)씨이고 부모가 복령사(福靈寺) 관음보살상에 기도하여 낳았다고 한다. 어릴 때 소미타(小彌陀)라고 불렸으며, 10세 때 강진 무위사(無爲寺)로 출가하여 천경(天鏡)의 제자가 되었다. 구산선(九山選)의 승과에 1등으로 급제했으며,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찬자 일연(1206~1289)에게 배우고, 그의 강의를 이어서 맡았다. 1284년(충렬왕 10) 국청사(國淸寺) 금탑(金塔)에 불아(佛牙)를 봉안할 때 경찬법회(慶讚法會)에 참여하였고, 1289년(충렬왕 15)부터 운문사(雲門寺)·연곡사(鷰谷寺)·보경사(寶鏡寺) 등의 주지를 지냈다. 충선왕 때에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이 되었고, ‘대사자왕 법보장해 국일(大師子王法寶藏海國一)’의 호를 받았다. 충숙왕 대에는 왕사로 책봉되며, ‘오불심종 해행원만 감지왕사(悟佛心宗解行圓滿鑑智王師)’의 호를 받았다. 말년에 밀양 영원사(瑩源寺)에 머물다가 칠곡 송림사(松林寺)에서 세수 73세, 법랍 63년으로 입적했으며, 탑비는 영원사에 세워졌다.
보감 혼구는 『어록(語錄)』 2권, 『가송잡저(歌頌雜著)』 2권, 『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 2권, 『중편지송사원(重編指頌事苑)』 30권 등을 저술했다고 하지만, 현존하지는 않는다. 또한 『삼국유사』 권3 제4 「탑상(塔像)」의 「전후소장사리(前後所藏舍利)」와 권4 제5 「의해(義解)」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 끝에는 ‘무극(無極)이 기록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무극은 혼구의 호로서, 그가 『삼국유사』 편찬 작업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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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이 여러 번 법복法服을 내렸고 승계가 대선사에 올랐다. 덕릉德陵(충선왕)이 즉위하여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을 특별히 제수하였고 ‘대사자왕大獅子王 법보장해法寶藏海 국일國一’의 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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