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수미 |
|---|---|
| 한자 | 守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도갑사, 신미, 대장경 |
| 시대 | 조선 전기 |
| 출생 | 미상 |
| 입적 | 미상 |
| 시호 | 묘각(妙覺) |
| 주요주석처 | 도갑사, 법주사, 해인사 |
| 비소재지 | 도갑사 |
조선 초기 선종 판사로서 대장경 인출과 불전 언해에 참여한 고승
조선 초기 도갑사 출신의 선승으로 선종 판사를 지냈고 대장경 인출과 불전 언해에 참여했으며 세조가 왕사의 교지를 내렸다.
전라도 고랑주(古朗州: 영암) 출신으로 속성은 최(崔)이고, 13세에 월출산 도갑사(道岬寺)에서 출가하였다. 나말여초에 도선(道詵)이 창건한 도갑사는 1407년(태종 7)에 승정 체제에 편입된 242사 중 읍치에 있던 88개 자복사(資福寺)를 명산대천의 사찰로 교체할 때, 조계종(曹溪宗) 소속 사찰로 이름을 올렸다. 수미는 교학에 관심이 커서 경론 강의를 찾아서 들었고,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서는 신미(信眉)와 함께 대장경을 공부하고 율장을 익혔다. 그러나 경전을 열심히 공부해도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달아 참선에 뜻을 두었고, 선종의 승과(僧科)에 합격하였다.
1457년(세조 3) 도갑사로 돌아와 세조의 동생 영응대군(永膺大君)의 시주로 약사여래 삼존불을 조성하였다. 1458년(세조 4) 해인사(海印寺) 재조대장경 50부를 인출할 때 신미와 그 제자 학열(學悅)·학조(學祖)와 함께 사업을 주도하여 세조의 신임을 얻었다. 1459년(세조 5)에는 세조가 수양대군일 때 한글로 작성한 부처의 일대기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세종이 그것을 운문으로 읊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합하여 『월인석보(月印釋譜)』를 편찬하였다. 여기에 혜각(慧覺)존자 신미와 판선종사(判禪宗事) 수미, 판교종사(判敎宗事) 설준(雪埈) 등 11명의 조력자 명단이 나온다. 또 1461년(세조 7) 간경도감(刊經都監)이 설립되자 신미, 학열, 학조 등과 불전 언해에도 참여하였다. 1464년(세조 10)에는 수미가 도갑사를 중창하는데, 세조가 관찰사에게 지원을 명하였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세조가 왕사(王師)의 교지와 묘각(妙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가사(袈裟)와 유리구슬 등을 하사했다고 한다. 수미는 세수 63세, 법랍 51년으로 입적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그의 탑은 도갑사에 세워졌고, 비는 200년이 지난 1689년(숙종 15)에 부휴계(浮休系)의 적전인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이 비문을 지어 1693년(숙종 19)에 세웠다.
조선 초기 세종 대와 세조 대에 불교계를 주도한 고승으로서 대장경 인출, 불전 언해 등에 참여하였고, 그의 활동 내용을 통해 당시 국가와 불교계의 관계 및 그 구체적 실상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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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는 수미守眉이고 낭주 출신이며 속성은 최崔씨이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기인이 준 구슬을 받고 잉태하여 낳았는데 기이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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