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찬영 |
|---|---|
| 한자 | 粲英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태고 보우, 태고사, 환암 혼수 |
| 시대 | 고려 후기 |
| 출생 | 1328년 |
| 입적 | 1390년 |
| 호 | 목암(木菴) |
| 시호 | 지감국사(智鑑國師), 대지국사(大智國師) |
| 주요 주석처 | 태고사, 가지사, 석남사, 신광사, 운문사, 월남사 |
| 비 소재지 | 충주 억정사지 |
고려 말 태고 보우의 제자이자 우왕의 왕사
고려 말의 선승으로 태고 보우(太古普愚)의 제자였고, 우왕 대에 왕사로 활동하는 등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목암 찬영(木菴粲英, 1328~1390)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부친은 사복시 직장(司僕寺直長)을 지낸 한적(韓績)이며, 모친은 청주(淸州) 곽(郭)씨이다. 14세 때인 1342년(충혜왕 복위 3)에 삼각산(三角山) 태고사(太古寺)의 태고 보우(1301~1382)에게 출가하였다. 보우는 앞서 1325년(충숙왕 12) 승과에 급제한 후 태고사를 지어 머물다가 1346년(충목왕 2) 원나라로 가서 임제종의 선법을 전수하였다. 찬영은 1350년(충정왕 2)에 승과에 합격하였고, 이후 양주 소설산(小雪山)과 삼각산에서 참선 수행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왕사 태고 보우가 새로 세워진 원융부(圓融府)를 맡아 구산선문을 통합하려 했을 때 시랑(侍郞)으로 보좌하였고, 1359년(공민왕 8)에는 양가도승록(兩街都僧錄)이 되었다. 중앙의 승직을 그만둔 후에는 석남사(石南寺), 월남사(月南寺), 신광사(神光寺), 운문사(雲門寺) 등에 주석하였다. 1372년(공민왕 21)에는 왕실 사찰인 내원당(內願堂)의 감주(監主)가 되었고, 공민왕으로부터 ‘정지원명무애국일선사(淨智圓明無碍國一禪師)’의 호를 받았다.
이후 우왕이 즉위한 뒤에 가지사(迦智寺) 주지로 임명되었고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이 되었다. 1383년(우왕 9)에는 왕사로 책봉되었고, 다음 해에 스승 보우의 비를 태고사에 건립하였다. 1390년(공양왕 2) 국사 책봉의 논의가 있었지만 그해 6월에 입적하였고, 공양왕이 지감(智鑑)국사의 시호와 혜월 원명(慧月圓明)의 탑호를 추증하였다. 3년 뒤인 1393년(태조 2)에 조선 태조가 다시 대지(大智)국사의 시호와 지감 원명(智鑑圓明)의 탑호를 내렸다. 찬영의 저술은 남아 있지 않지만, 1273년(원 세조 3) 원에서 편찬된 『농상집요(農桑輯要)』를 14세기 후반에 고려에서 다시 간행할 때 그가 음과 훈을 붙였다고 한다.
고려 말의 선승으로 우왕의 왕사를 지내는 등 불교계를 이끌었다. 태고 보우의 적전 제자였지만, 17세기 전반에 정립된 태고 법통에서는 나옹 혜근(懶翁惠勤)의 문도 환암 혼수(幻庵混修)가 그를 대신해 보우의 전법 제자 자리에 들어갔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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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는 찬영粲英이고, 자는 고령古欞이며, 법호는 목암木菴이고, 성은 한韓씨이다. 아버지는 적績으로 양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곽郭씨로서 청주 사람이다. 태정 5년 무진년(1328, 충숙왕 15) 정월 8일에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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