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복구 |
|---|---|
| 한자 | 復丘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수선사, 백양사, 불갑사 |
| 시대 | 고려 후기 |
| 출생 | 1270년 |
| 입적 | 1356년 |
| 호 | 무능수(無能叟), 무언수(無言叟) |
| 시호 | 각진(覺眞) |
| 주요주석처 | 백양사, 송광사, 불갑사, 월남사 |
| 탑소재지 | 불갑사 |
| 비소재지 | 불갑사 |
고려 말 충정왕의 왕사이자 수선사의 제13세 사주
고려 말 충정왕의 왕사이자 수선사의 제13세 사주였고 정토사(백양사), 불갑사 등에서 활동하였다.
복구(復丘, 1270~1356)는 경상도 고성 출신으로 부친은 판밀직(判密直) 우상시(右常侍)를 지낸 이존비(李尊庇, 1233~1287)이다. 속명은 이정(李精)이고 호를 무능수(無能叟), 무언수(無言叟)라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능력이 뛰어났고 불교에 귀의하여 8세 때인 1277년(충렬왕 3) 백암산(白巖山) 정토사[淨土寺: 뒤의 백암사(白巖寺), 지금의 백양사(白羊寺)]의 일린(一麟)에게 출가하였다. 10세 때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 뒤의 송광사)의 제5세 사주(社主) 원오(圓悟) 천영(天英)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수선사 제8세 자각(慈覺) 도영(道英)에게 배우고 21세에 선과(禪科)에서 수석 합격했지만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정토사에서 10여 년 동안 참선 정진하였다.
이후 40여 년을 정토사, 수선사, 월남사(月南寺), 불갑사(佛岬寺) 등에서 교화 활동을 펼쳤다. 1330년(충숙왕 17) 혜각(慧覺)에 이어 수선사 제13세 사주가 되었고, 1340년(충혜왕 복위 1) 무렵 정토사를 중창하였다. 1341년과 1348년(충목왕 4), 1353년(공민왕 2)에 정토사에서 경전을 읽고 수행하는 전장(轉藏) 법회를 열었고, 구산선문 중 자신이 속한 사굴산문(闍崛山門) 전통을 강조하였다. 1350년(충정왕 2)에 왕사(王師)가 되었고 각엄존자(覺儼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1352년(공민왕 1)에 왕명으로 영광 불갑사에 가서 주석하였다. 1355년(공민왕 4)에 다시 정토사로 옮겨서 머물다가 7월 27일 임종게를 남기고 세수 86세, 법랍 76년으로 입적하였다. 12월에 국사로 추증되었고 시호 각진(覺眞), 탑호 자운(慈雲)이라고 하였다. 1359년(공민왕 8) 왕명에 의해 이달충(李達衷)이 비문을 지었고 이제현(李齊賢)이 글씨를 써서 불갑사에 탑과 비를 세웠다. 비문은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
고려 말의 선승으로 수선사의 사주와 왕사를 지냈고 백양사와 불갑사, 송광사(松廣寺) 등 호남 지역 사찰에 주로 머물며 선의 기풍을 떨치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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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휘는 복구復丘이고 자는 무언無言이다. 고성 사람으로 ‘판밀직判密直 우승시右承侍 문한학사文翰學士 승지承旨’ 이 공李公 존비尊庇의 아들이다. 모부인母夫人은 늘 대승불경大乘佛經을 외었는데 일찍이 꿈에서 한 거사가 관복을 차려입고 앞에 나타나 “제가 얼마 후에 올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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