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신라 화엄 교학 |
|---|---|
| 한자 | 新羅 華嚴 敎學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의상, 법계도기, 부석사, 총수록 |
| 연도 | 7~9세기 |
| 시대 | 통일신라 |
| 공간 | 신라 |
| 관련장소 | 부석사 |
| 관련인물 | 의상 |
통일신라시대 유식학과 함께 불교 사상의 중심을 이룬 『화엄경』 중심의 교학
삼국통일 후 유식학과 함께 신라불교 사상의 중심을 이룬 『화엄경』 중심의 교학으로, 의상(義相, 625~702)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신라 화엄학은 의상과 그의 학문을 계승한 의상계에 의해 체계적 연구와 전수가 이루어졌다. 의상은 중국 화엄종의 제2조 지엄(智儼)에게 수학하였다. 지엄의 또 다른 제자이자 중국 화엄학의 이론 체계를 정립한 법장(法藏)과 동문으로서 귀국 후에도 학문적 교류를 이어 갔다. 의상의 제자로는 오진(悟眞), 지통(智通), 표훈(表訓), 진정(眞定), 진장(眞藏), 도융(道融), 양원(良圓), 상원(相源), 능인(能仁), 의적(義寂), 그리고 도신(道身) 등의 이름이 전한다.
화엄학은 부처의 깨달음의 세계를 묘사한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며 현상 존재의 상호연관성과 부처와 중생의 원리적 동일성을 밝히는 교학이다. 중국 화엄학은 『화엄경』에 나오는 만법의 근본이 되는 진리의 세계인 법계(法界)를 중시하면서 발전하였다. 해동 화엄의 문을 활짝 연 의상은 661년부터 671년까지 10여 년간 당에 유학하여 지엄에게 배웠다. 차별이 없는 화엄의 세계를 7언 30구, 210자에 압축해 놓은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를 지어 지엄의 인정을 받았다. 의상은 귀국 후 경주가 아닌 지방에서 활동하며 676년(문무왕 16)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였다. 그는 국왕의 토지 기부를 거부하고 불교의 가르침대로 승단의 무소유를 실천했으며, 하층민인 천민도 제자로 받아들이는 등 무차별의 평등을 실천하였다.
신라 화엄 교학은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그리고 그의 강의 내용을 제자 지통과 도신이 필사한 『추혈문답(錐穴問答)』과 『도신장(道身章)』 등이 고려시대의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에 전하고 있어 대체적 내용을 알 수 있다. 의상의 독창적 화엄 사상으로는 자신과 타자 모두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당과불(當果佛)과 오척신(五尺身) 관념을 들 수 있다. 이는 스스로의 과보를 얻는 자리(自利) 수행을 통해 자기 몸이 바로 부처임을 알고 몸 자체에서 부처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요체로 한다. 또 누구나 평등하며 모든 중생이 곧 부처임을 깨닫고 부처에게 하듯 누구에게나 경배하는 이타적 실천행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의상은 아미타신앙과 관음신앙도 중시하여 화엄학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실천적 사상을 이어받은 의상의 문도들은 화엄학파를 형성하며 신라불교 사상계의 주류가 되었다.
의상은 해동 화엄을 열었고 실천적 화엄학을 추구하였다. 많은 제자가 그의 화엄교학을 계승하여 신라는 물론 한국 화엄 사상의 원류를 이루었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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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도』는 의상義相 조사께서 일승의 오묘한 뜻을 서술하신 것으로, 30구의 게송을 포함하고 있다. 그윽한 관문을 여는 신령한 열쇠이고 법의 바다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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