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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계

한글사찰계
한자寺刹契
유형역사
키워드갑계, 범어사, 승역, 염불계
시대조선 중·후기
관련장소범어사, 건봉사 등
조선 후기에 승려와 신도가 참여한 신앙결사이자 사원의 재정 운영을 지원한 계회
조선 후기에 승려를 중심으로 신도들이 동참한 신앙결사이자 토지 등에서 이익을 내어 불사를 벌이고 사원 운영을 지원한 계회(契會)이다. 조선 후기에는 사원 운영의 재정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찰계가 다수 결성되었다. 사찰의 계회에는 승려만이 아니라 재가 신도도 동참했고, 회비를 거두어 토지를 구입하고 그 이익을 증식하여 전각 건립이나 중수 등의 불사를 벌이고 불전의 공양 등 사찰 유지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였다. 조선 후기에 확인되는 사찰계는 250건이 훨씬 넘으며, 특히 범어사(梵魚寺)는 계회를 통해 부유한 거찰로 성장한 대표적 사례이다. 사찰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었는데, 나이가 비슷한 승려들이 결성한 갑계(甲契), 같은 문도끼리 참여하여 스승의 장례나 조사의 재회 비용을 마련한 문중계(門中契), 전각을 조성하는 등의 불사를 위해 조직한 불량계(佛粮契)나 시주계(施主契), 규모가 큰 사찰의 판청(判廳)이나 서청(書廳) 등에 속한 승직자들이 주도한 청계(廳契)가 있었다. 또 특정 신앙을 위한 사찰계로는 승과 속이 함께 염불신앙과 재원 마련을 위해 만든 염불계(念佛契)나 미타계(彌陀契), 그리고 지장계(地藏契), 칠성계(七星契)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산림의 육성과 보호를 위한 송계(松契), 승려 교육을 위한 학계(學契), 범패 전수와 의례를 위한 어산계(魚山契) 등 특수 목적성 계회도 있었다. 시기별로는 16세기 후반에 승려 중심의 갑계가 제일 처음 확인되고, 이후에도 사찰계의 중심이었다. 18세기 이후에는 염불계와 불량계의 비중이 커졌는데, 염불계는 19세기 건봉사(乾鳳寺) 만일염불회에서 보듯 그 참여도가 매우 높았으며, 사찰의 재정 운영에서 염불당 화주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경상도 오어사(吾魚寺)에서는 승속 150명이 염불계를 만들어 토지를 구입하고 염불당을 조성하였다. 또한 불량계 중에는 지방관이 계원으로 참여한 사례도 있다. 조선 후기에는 승역(僧役)의 부담 때문에 사찰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승려 개인 토지의 상속이나 사찰계 등을 통해 사원 재정의 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사찰계는 신앙 목적의 결사이자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계회로서 승려, 또는 승과 속이 함께 참여하여 불사를 지원하고 사찰 운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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