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조선불교유신회 |
|---|---|
| 한자 | 朝鮮佛敎維新會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조선불교청년회, 중앙학림 |
| 연도 | 1921년 |
| 시대 | 근대 |
| 공간 | 불교청년회관 |
| 관련인물 | 한용운 |
1920년대에 불교의 유신을 목표로 자주권 회복을 추구한 단체
1920년대에 불교의 유신을 목표로 자주권 회복을 추구한 단체로, 사찰령 철폐를 주장하였다.
1920년대 초에 불교계 혁신 세력이 유신을 촉구하며 교단 자주권을 되찾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앞서 1920년 6월 20일 서울 각황사(覺皇寺)에서 김상호(金尙昊), 도진호(都鎭浩) 등이 중앙학림(中央學林)의 학승들을 모아 조선불교청년회(朝鮮佛敎靑年會)를 결성하였다. 청년회는 불교개혁을 위한 건의안을 제출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자, 이듬해인 1921년 12월 20일 서울의 불교청년회관에서 조선불교유신회를 출범하였다.
이후 한용운(韓龍雲) 등이 주도한 조선불교유신회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내세우며 일제의 사찰령 철폐를 주장하였다. 유신회 측은 1922년 1월 5일부터 200여 명의 대표를 모아 정교 분립을 결의하고 건의문을 채택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많은 폐단을 불러일으킨 사찰령을 폐지하고 불교계의 자율적 운영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사찰령 체제는 30본산 본사의 주지 임면권을 총독이 갖고, 말사 주지는 각 도의 장관이 맡는 등 총독부에서 불교계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또한 사찰 재산의 관리처분권을 총독이 행사하는 등 불교를 정치적 통제 아래 두었다. 유신회는 본사 주지의 전횡과 전통적 사찰공동체의 붕괴, 불교의 자주성 상실 및 분권화의 폐단, 대처승 등 현실적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교단 개혁과 통일적 중앙기구 설립을 결의하였다.
1920년대에는 3.1운동의 영향으로 총독부의 식민 통치 기조가 군대와 경찰의 강압적 무단통치 방식에서 문화통치로 전환되고 유화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에 여러 정치·사회·종교 단체 및 조직이 생겨나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한편 총독부 학무국 안에 종교과가 신설되고 학무국이 총독 직속으로 승격되면서 주요 종교 단체를 중앙집권화하고 그 대표자를 회유·순응하게 하여 내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였다. 유신회를 비롯한 불교계의 혁신 세력도 교단의 중앙기구로 총무원을 세웠지만, 30본산 주지회의 측에서 만든 교무원과 대립을 거듭하다가 1922년 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교무원으로 통합되었다. 유신회 활동은 본산 주지들의 방해와 총독부의 거부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1929년 1월에 열린 조선불교 선교양종 전국 승려대회에서 종헌을 제정하고 자율적 교정 운영을 추진하였다. 이때도 총독부에서 승인하지 않았지만, 1931년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이 종헌 실행을 촉구하며 사법 개정운동을 벌이는 등 개혁 활동을 이어갔다.
조선불교청년회를 모태로 하여 출범한 단체로, 사찰령 철폐를 주장하고 불교계의 개혁과 자율적 운영을 추구하는 등 정교분리를 앞장서 촉구하였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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