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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번전

한글방번전
한자防番錢
유형역사
키워드남한산성, 북한산성, 팔도도총섭, 의승군
연도1756년
시대조선 후기
공간남한산성, 북한산성
관련장소개원사, 중흥사
관련인물호암 약휴
조선 후기 남·북한산성 의승군이 교대로 근무하는 승역을 대신하여 내는 돈
조선 후기 남·북한산성 의승군이 교대로 근무하는 승역을 대신하여 내는 돈으로, 영조 대에 처음 시작되어 정조 때에 반액으로 줄었다.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의 의승군 제도가 운영되었다. 1626년(인조 4) 완공된 남한산성에는 개원사(開元寺)를 비롯한 아홉 개 사찰이 건립되었고 승군이 방비를 맡았다. 이후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이 완성되어 중흥사(重興寺) 등 열한 곳의 승영(僧營) 사찰이 세워졌고 마찬가지로 승군이 방어하였다. 1714년(숙종 40) 남·북한산성 의승방번제(義僧防番制)가 정비되어, 두 산성에는 각기 의승 약 350명이 1년에 여섯 차례 번을 나누어 역을 담당하였다.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6도의 승려 약 700명이 교대로 산성에 와서 승역을 졌다. 그런데 거리가 먼 지역의 승려는 부담이 매우 컸고, 이에 1736년(영조 12)부터 2년간 북한산성 도총섭을 지낸 호암 약휴(護岩若休, 1664~1738)가 혁파 건의를 올렸다. 그 결과 1756년(영조 32) 남·북한산성 의승군의 윤번제가 방번전제(防番錢制)로 바뀌었다. 이는 산성까지 직접 와서 역을 지는 대신, 매년 지역·사찰별로 승려 수와 비용을 할당하여 고용전(雇用錢)을 거두어 상주 승군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남북한의승방번변통절목(南北漢義僧防番變通節目)』에 따르면, 남·북한산성 의승의 수는 전체 707명으로 남한산성 356명, 북한산성 351명이었다. 방번전은 거리에 따라 차등을 두었는데, 전라도 198명과 경상도 249명은 1명당 22냥이었고, 충청도는 114명, 황해도는 66명, 강원도는 60명으로 1명당 18냥을 냈다. 경기도는 승역이 면제되는 원당 등 왕실 관련 사찰이 많아 20명만 책정되었고, 거리가 가까워 1명당 10냥이었다. 방번전의 총액은 14,354냥이었고 운임을 뺀 실제 수령액은 13,622냥이었다. 이 중 승군의 식비 등 두 산성에 1년간 지급한 공용 비용은 12,019냥이었고, 남는 돈은 남한산성 승영 사찰의 운영에 보탰다. 이후 다른 잡역과 공물 부담 때문에 남·북한산성 방번전을 내는 데 어려움이 많고 승역을 지는 승려 수 자체가 줄고 있다는 보고를 받아들여 1785년(정조 9) 방번전을 40% 정도 감액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1750년(영조 26)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반감하여 내는 균역법 시행으로 양인의 국역 부담이 줄고 승역이 상대적으로 커져서 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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