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만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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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卍黨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조선불교청년회, 조선불교유신회, 조선불교청년총동맹, 범어사, 한용운 |
| 연도 | 1930~1933년 |
| 시대 | 근대 |
| 관련장소 | 범어사 |
| 관련인물 | 한용운, 김법린 등 |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조직하여 1933년에 해산한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조직하여 1933년에 해산한 불교계 항일 비밀결사로서 사찰령 폐지, 정교분리와 자율적 교정을 추구하였다.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1920년대는 총독부의 정책 기조가 강압적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많은 정치·사회·종교 단체와 조직이 만들어지고 제한된 범위에서 활동이 가능해졌다. 종교 정책도 주요 종교 단체를 중앙집권화하고 그 대표자들을 회유, 순응하게 하여 내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방침이 취해졌다. 당시 불교계에서도 중앙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1920년 조선불교청년회와 1921년 조선불교유신회가 조직되었고, 이들은 교단의 중앙기구로 총무원을 설립하였다. 한편 30본산 주지회의 측에서는 교무원을 만들어 서로 대립하다가 1922년 총독부가 편을 들어준 교무원으로 통합되었다.
1920년대에 활발히 전개된 혁신계 승려들의 활동이 결국 현실적 벽에 부딪히면서, 비밀결사 조직인 만당이 출범하게 되었다. 1930년 5월에 김법린‧김상호‧이용조‧조학유 등 주로 범어사 출신 승려들이 뜻을 모아 사찰령 체제의 타파, 정교분리와 자율적 교정을 추구하며 조직하였다. 이후 강유문 등 중앙불교전문학교의 학승들을 포함해 만당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추가되면서 2차 결사, 3차 결사가 이루어졌다. 김법린은 도쿄에서 만당의 도쿄 지부를 만들었고 최범술, 허영호 등이 여기에 가담하였다. 비밀결사 만당의 구체적 조직이나 활동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당수는 한용운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도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 한용운의 직접 지시로 만당이 조직되고 운영되었다는 설, 둘째 한용운은 정신적 지주로서 당수로 추대되기는 했지만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는 설이다. 만당은 1933년에 자진 해산하였고, 구성원들은 조선불교청년총동맹으로 옮겨서 계속 활동하였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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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월 스님의 또 다른 상좌, 김상호 선생은 매우 당찬 성격의 소유자였다. 조선불교청년회, 만당의 핵심 멤버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에서 귀국하면서 임정의 불교계 국내 비밀 통신 사무를 담당하였다. 불같은 성격이지만, 독립정신이 투철하여 오성월 스님이 각 본산에 요청해서 모은 비밀자금을 받아 임시정부에 있는 김구 선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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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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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청년총동맹과 만당 (卍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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