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갑계 |
|---|---|
| 한자 | 甲契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사찰계, 염불계, 사명 유정 |
| 시대 | 조선 중·후기 |
| 관련장소 | 범어사 등 |
| 관련인물 | 사명 유정 |
조선시대에 비슷한 나이대의 승려들이 결성하여 사찰 운영의 재원을 마련한 사찰계의 하나
조선시대에 비슷한 나이대의 승려들이 결성하여 사찰 운영의 재원을 마련한 사찰계이다.
조선 후기에는 사원의 재정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사찰계(寺刹契)가 다수 조직되었다. 사찰계는 승려, 또는 승려와 신도가 함께 참여하여 계금을 모아 토지를 구입하고 이익을 늘려서 전각 건립이나 중수 불사 등을 벌이고 사찰 유지에 필요한 기본 재원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에 확인되는 사찰계만 해도 250건이 넘어서 사원 경제에 큰 보탬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갑계(同甲契)로도 불리는 갑계는 사찰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 1564년(명종 19) 사명(四溟) 대사 송운 유정(松雲惟政, 1544~1610)이 동년배 승려들과 함께 수행하기 위해 만든 갑회(甲會)가 그 효시이다. 갑계는 동갑이 원칙이지만 대개 5~6년 이내의 연령층으로 구성되었고, 규모도 지역과 사찰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여러 기록에서 18세기 이후에는 계원들이 전각 중수 등의 불사, 사찰 운영을 위한 기금을 출자하여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해사(銀海寺)의 「갑오갑유공비(甲午甲有功碑)」를 보면 1808년(순조 8)부터 1824년(순조 24)까지 불화를 수리하고 법당 등에 등촉과 향, 땔감 등을 공급하는 활동을 하였다.
사찰계에는 갑계 외에도 같은 문도끼리 조직한 문중계(門中契), 전각 중수 등 불사를 위한 불량계(佛粮契), 큰 사찰의 승직자들이 주도한 청계(廳契) 등이 있었다. 또 특정 신앙을 위한 사찰계로 승과 속이 함께 모여 염불신앙과 재원 마련을 도모하는 염불계(念佛契), 지장계(地藏契), 칠성계(七星契) 등을 들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갑계와 함께 염불계와 불량계의 비중이 컸는데, 염불계는 대중의 참여도가 높았으며, 사찰의 재정 운영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사찰계를 통해 사원의 재정적 기반을 확대할 수 있었다. 신앙공동체 결사이자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계회였던 사찰계는 16세기 중반 사명 유정이 조직한 갑계를 그 효시로 한다. 갑계는 불량계, 염불계와 함께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이 결성된 사찰계였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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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무오戊午 갑계甲契가 땅을 바친 기록을 지었는데 전 주지 체주體周가 나와 말하였다. “무오가 바친 땅은 거의 백百으로써 헤아리니 어찌 그리 공이 큰지요. 이것은 이미 우리 스님을 번거롭게 해서 판板을 달았습니다. 그 뒤에 또 법당 동북쪽 모퉁이에 있는 아무개의 원림園林을 사서 보시했습니다. 그것은 사방으로 몇 리나 되는데 본사의 숲과 합하여 울창한 게 기원정사(祗陀)의 풍모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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