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진귀조사설 |
|---|---|
| 한자 | 眞歸祖師說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선문보장록, 조사선, 범일, 천책, 청허 휴정 |
| 시대 | 고려 후기~조선 말기 |
| 관련인물 | 범일, 천책, 청허 휴정 |
진귀조사가 부처에게 선을 전했다는 한국 고유의 불교사 인식
진귀조사(眞歸祖師)가 부처에게 선을 전했다는 한국 고유의 불교사 인식으로, 고려 후기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 처음 보이며, 조선 말까지 조사선(祖師禪)의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널리 인용되었다.
진정(眞靜)국사 천책(天頙)이 찬술한 『선문보장록』(1293)에는 『해동칠대록(海東七代錄)』이라는 현존하지 않는 책을 근거로 한 진귀조사설이 처음 등장한다. 9세기 통일신라의 선승 범일(梵日)이 달마(達磨)의 게송을 인용하여 “진귀조사가 설산에 있을 때 석가에게 조사의 심인을 전하게 하였다.”라는 내용이다. 『선문보장록』은 선종이 교종에 비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선과 관련된 전승을 모은 선종 문헌이다.
진귀조사설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전하지 않은 한국불교만의 고유한 인식으로 후대까지 전승되었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은 「선교석(禪敎釋)」에서 “세존이 설산에 6년간 있으면서 도를 깨달았지만, 이후 진귀조사를 찾아가서 현미하고 궁극적인 뜻을 전해 얻었다. 이것이 바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근원이다.”라고 적었다. 또한 19세기 선 논쟁에서도 조사선의 우위를 강조하기 위해 진귀조사설이 자주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본인 학자 누카리야 가이텐은 『조선선교사』(1930)에서, 경전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가설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부처가 선을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비밀리에 전했다는 삼처전심(三處傳心)설 또한 위경에 근거한 조작이며 한국에만 있는 망설이라고 폄하하였다. 최근에는 이러한 불교사 인식을 교로부터 선의 독립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정체성 확립의 문제로 보는 연구가 나왔다.
부처가 선을 진귀조사로부터 전수했다는 진귀조사설은 교에 비하여 선의 우위를 주장한 한국불교만의 고유한 인식이다. 고려 후기에 제기되어 조선 말의 선 논쟁에 인용되며 선종의 우월성과 조사선의 뛰어남을 강조한, 불교계의 정체성을 찾는 데 이바지한 한국불교 고유의 학설이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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