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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학림

한글중앙학림
한자中央學林
유형역사
키워드명진학교, 중앙불교전문학교, 박한영, 한용운
연도1915~1922년
시대근대
관련장소각황사, 원흥사
관련인물강대련, 박한영, 한용운
1915년부터 1922년까지 존속한 불교계의 중앙 교육기관으로 동국대학교의 전신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중앙 교육기관으로 1915년부터 1922년까지 운영된 동국대학교의 전신이다. 불교계의 근대식 고등교육기관은 1906년 불교연구회가 서울 동대문 밖 원흥사(元興寺)에 명진(明進)학교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10년 불교사범학교, 1914년 불교고등강숙에 이어 1915년 불교중앙학림으로 학제 및 학교명이 바뀌었다. 1915년 1월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각황사(覺皇寺)에서 개최된 30본산 주지회의 정기총회에서 불교고등강숙을 중앙학림으로 개칭한 후 11월 5일 숭일동(현재 명륜동 북묘 자리)으로 이전하여 개교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30본산에는 지방학림을 개설하였다. 중앙학림의 초대 학장은 30본산 연합사무소 위원장이었던 강대련(姜大蓮)이 맡았고, 학감은 김하산(金河山), 강의는 백초월(白初月)‧송헌석(宋憲奭)‧이명칠(李明七) 등이 담당하였다. 박한영(朴漢永)도 1916년부터 강의를 했고, 1919년 학장에 취임하여 1922년 5월까지 재직하였다. 학생은 전국 30본사를 9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별로 인원수를 제한했으며 정원은 120명이었다. 중앙학림의 입학 자격은 전통 강원을 졸업한 승려들이었기 때문에 중앙학림의 졸업생은 포교사가 되거나 일본으로 유학하는 등 불교계의 중추 세력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19년 3.1운동 때는 중앙학림 학생들이 한용운(韓龍雲)의 지도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만세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를 빌미로 총독부는 1922년 4월에 학교를 강제로 폐교하였고, 1928년에 가서야 불교전수학교로 문을 열게 되었다. 이어 1930년에 다시 중앙불교전문학교로 개칭하였고, 이후 중앙불전은 1940년 6월에 혜화(惠化)전문학교로 바뀌었다. 1946년에는 혜화전문이 동국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53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동국대학교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불교 중앙 교육기관으로 많은 인재를 양성했고, 3.1운동 때 불교계 만세운동의 진원지였던 중앙학림은 몇 번의 개칭을 거쳐 현재의 동국대학교로 이어졌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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