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임제삼구 |
|---|---|
| 한자 | 臨濟三句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임제종, 진정 천책, 선문강요집, 환성 지안, 선문오종강요, 백파 긍선, 선문수경, 초의 의순, 선문사변만어, 선 논쟁 |
| 시대 | 고려~조선 |
| 관련인물 | 임제 의현, 환성 지안, 백파 긍선, 초의 의순 |
당의 선승 임제 의현의 문답에 나오는 어구
당의 선승 임제 의현의 문답에 나오는 어구로 고려 후기 이래 조선에서 중시되었다.
중국 임제종의 조사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이 어떤 승려와 나눈 문답 중에 등장한다. 의현은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고, 무엇이 진법(眞法)이며, 어떤 것이 진도(眞道)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진정한 부처란 마음의 청정함이고, 참된 법은 마음의 밝은 빛이며, 참된 도란 어디에나 걸림이 없이 비추는 청정한 빛의 작용이다.”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제1구에서 깨달으면 부처와 조사가 되고, 제2구에서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며, 제3구에서 깨달으면 제 몸도 구제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제1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삼요(三要)에 붉은 점을 찍어 주인과 손님을 헤아려서 나누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제2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묘해(妙解)가 어찌 무착(無著)의 질문을 용납하겠는가? 방편[漚和]으로 어찌 흐름을 끊은 근기(根機)를 저버리겠는가?”라고 답하였다. 또 무엇이 제3구인지를 묻자 “무대 위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를 보라. 당기고 늘어뜨리는 것은 모두 그 뒤의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임제종의 선법은 고려 말 이후 선종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고, 임제삼구를 인용한 문헌도 많다. 먼저 13세기에 활동한 진정 천책(眞靜天頙, 생몰년 미상)의 찬으로 전하는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은 임제종과 운문종(雲門宗) 선풍의 요체를 정리한 책으로 「삼성장(三聖章)」과 「일우설(一愚說)」에서 임제삼구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다음으로 조선 후기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의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는 선종 5가의 개요서로서 임제종 우위의 선종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지안은 “임제삼구는 임제종의 가풍일 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에서 중생까지 모든 이들의 본분사(本分事)이니 이를 벗어나 설법하면 모두 잘못이다.”라고 단언하였다.
19세기 선 논쟁에서도 임제삼구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은 『선문오종강요사기(禪門五宗綱要私記)』에서 임제삼구를 기준으로 선종 5가 가운데 임제종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보았다. 또 『선문수경(禪文手鏡)』에서도 “부처와 조사, 선현의 말이 임제삼구에서 벗어나 있지 않고 선과 교의 취지가 다 임제삼구에 포괄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어 “『인천안목(人天眼目)』, 『선문강요집』, 『선문오종강요』를 먼저 읽고 임제삼구의 뜻을 궁구하면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뒤에 『선문염송(禪門拈頌)』, 『전등록(傳燈錄)』 등에 적용하여 대조해 보면 환히 드러날 것”이라고 하였다.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에서 긍선의 설을 반박하며 선 논쟁의 불을 지폈는데, 그는 긍선이 조사선‧여래선‧의리선을 임제삼구에 각각 배정한 것을 비판하였다.
이능화(李能和, 1869~1943)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918)에서 선 논쟁과 관련하여 상세히 기술하면서 “유가(儒家)에 호락이기(湖洛理氣) 논쟁이 있다면 선문(禪門)에는 임제삼구 논변이 있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임제삼구는 조선 후기에 중시되었고, 선 논쟁의 핵심 주제였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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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종류의 선을 임제의 삼구에 짝지어 보겠다. 첫째 조사선은 제1구에 해당된다. 기틀과 활용을 갖추고 부정적 방법인 살殺과 긍정적 방법인 활活이 모두 온전히 있으므로 제1구에서 알아차리면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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