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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부

한글원융부
한자圓融部
유형역사
키워드태고 보우, 가지산문, 광명사, 백장청규
연도1356년
시대고려 후기
관련장소광명사
관련인물태고 보우
고려 공민왕 대에 태고 보우가 주도하여 선과 교의 통합과 조화를 위해 설립한 기관
고려 말 공민왕 대에 왕사 태고 보우가 주도하여 선과 교를 통합하고 조화를 추구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1356년 4월 23일에 공민왕은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를 왕사로 임명하고 원융부를 설치하여 관리를 배정하였다. 보우가 요청하여 자신이 주석하던 개경 광명사(光明寺)에 설립된 원융부는 ‘구산원융(九山圓融) 오교홍통(五敎弘通)’을 표명하였다. 이는 선종인 구산을 원융하고 교종인 오교를 널리 펴서 불교를 진흥한다는 의미이다. 이해 5월 6일에 공민왕은 “지금부터 선종과 교종의 종문(宗門)에서 사찰의 주지는 왕사의 추천을 받아 임명할 것이다.”라고 하여, 보우에게 교단의 인사 추천권을 주었다. 「태고행장」에는 “지금은 구산의 선종 무리가 자기 산문이 다른 산문보다 뛰어남을 자부하면서 다투는데 근래에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져 조화와 올바름이 손상되었다. 선은 원래 하나의 문인데 여러 산문으로 나뉘었으니, 석가세존의 평등과 무아(無我)의 도, 여러 조사들의 격외(格外)의 선풍, 역대 선왕이 법을 수호한 뜻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여, 서로 대립하던 당시 교단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태고 보우는 구산선문의 가지산문(迦智山門) 출신으로 승과에 합격한 후 『원각경(圓覺經)』을 통해 지해(知解)를 타파했고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북한산 태고암(太古庵)에서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태고암가」를 지었다. 46세의 나이로 중국 원나라에 가서 1346년 원 황실에서 『반야경(般若經)』을 강론했고, 다음 해에 강남 지방의 임제종 선승인 석옥 청공(石屋淸珙)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보우는 1348년에 귀국, 왕사가 되어 원융부를 통해 불교계의 통합과 조화를 추구하였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신돈(辛旽, ?~1371)에게 배척되어 밀려났다가 신돈이 축출되고 난 뒤에 재기하여 1371년에 국사로 책봉되었다. 보우는 중국에서 임제선법(臨濟禪法)을 전수해 왔고, 『백장청규(百丈淸規)』와 『치문경훈(緇門警訓)』을 가져와서 유포시켰다. 『백장청규』는 사찰의례와 승려의 일상 준거가 되는 선종 규범서이며, 『치문경훈』은 교훈과 경계가 되는 법어 등을 모은 책이다. 이를 통해 보우는 선종의 임제선을 수행 방안으로 삼으면서 교단의 규율과 의례 등을 정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원융부의 설립은 당시 선과 교의 산문과 종파들로 나뉘어 경쟁하던 상황에서 선종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통합하고 조화를 추구하려는 시도였다.
· 집필자 : 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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