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기복불교 |
|---|---|
| 한자 | 祈福佛敎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관음신앙, 약사신앙, 산신신앙, 칠성신앙 |
| 시대 | 삼국~ |
| 관련장소 | 용주사 |
부처와 보살 등에게 복을 빌고 구하는 불교신앙의 한 특성
부처와 보살 등에게 복을 빌고 구하는 불교신앙의 한 특성으로, 한국불교사에도 전 시기에 걸쳐 나타난다.
복을 구하는 것은 모든 종교의 기본 속성이다. 다만 타인이나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행위를 저해할 정도로 자신의 복만 추구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깨달음을 얻는 구도의 길로 시작한 불교도 대중 사이에서 신앙화되고 세계 종교로 거듭나면서 기복의 요소가 점차 강화되었다. 대승 경전에도 기복과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데, 『법화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부르면 물‧불 등 일곱 개의 화를 피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한국불교사에서 기복 불교는 삼국시대 불교 전래 당시부터 시작된다. 고구려에는 372년 소수림왕 때 불교가 전해졌는데, 391년 고국양왕이 “불법을 받들고 믿어서 복을 구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백제도 아신왕이 “불법을 숭신하여 복을 구하라.”고 했고, 신라 법흥왕 또한 흥륜사(興輪寺)를 지으며 “창생(蒼生)을 위해 복을 닦고 죄업을 소멸시키는 도량을 만들고 싶다.”라고 하였다. 삼국과 통일신라 때는 병의 치료,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 등 다양한 사례가 확인되며, 현세의 복을 비는 관음과 약사, 정토로의 길을 이끄는 아미타와 미륵 등 불교신앙 또한 기복의 특징을 가진다. 고려시대 불교에 대해서도 호국불교 외에 복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기복양재(祈福禳災)’를 주요한 특성으로 보기도 한다.
여말선초의 ‘유불 교체’를 설명할 때도 고려 말 교학 연구나 선 수행의 풍토가 약화되고 기복과 공덕 신앙이 중심이 되어 교단이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많다. 그리고 유교 국가를 지향한 조선시대에는 여성과 서민을 대상으로 한 기복신앙으로 불교가 명맥을 유지했다는 것이 일반적 이해이다.
실제로 조선 사람들은 현실의 기복과 내세의 추복, 그리고 정토로의 염원을 불교를 통해 해소하였다. 불교는 여성과 서민뿐 아니라 일부 사대부 가문, 그리고 왕실에서 특히 중시되었다. 왕실은 수많은 원당(願堂) 사찰을 지정했고,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의 현륭원(顯隆園) 옆에 용주사(龍珠寺)를 세우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복을 빌기 위해 절을 건립했다는 「봉불기복게(奉佛祈福偈)」를 지었다. 한편, 후기로 갈수록 불교와 산신‧칠성 등 민간신앙과의 결합이 가속화되며 기복적 측면이 더 강화되었다. 예를 들어 산신은 부모를 위한 현세 기복과 내세 명복을 비는 대상이었고, 칠성은 무병장수와 길흉화복의 주재를 담당하는 존재로 믿어졌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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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시대에 진감眞鑑 노승이 서쪽 중국에서 법의 등불을 잇고 겸하여 이 방법을 익히고 돌아와서 옥천사玉泉寺에 메아리를 남겨 주었으니, 이는 범패가 우리나라에 크게 떨치는 계기가 되었다. 기복祈福을 하거나 영가靈駕를 위하여 재를 올릴 때에 범패가 아니면 할 수가 없어 마침내 이 범패가 예로부터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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