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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신앙

한글문수신앙
한자文殊信仰
유형역사
키워드자장, 월정사, 상원사, 보현신앙
연도7세기 이후
시대삼국시대 말기~
관련장소월정사, 상원사, 청평사
관련인물자장, 경흥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믿고 귀의하는 불교신앙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믿고 귀의하는 신앙으로 강원도 오대산이 문수신앙의 성지이다. 문수(文殊)는 범어 만주슈리(Manjushri)를 음차한 문수사리(文殊師利)‧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줄인 말이며, 훌륭한 복(福)과 덕(德)을 지녔다는 뜻이다. 불교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은 부처 입멸 후 태어나 반야의 이치를 선양하고 『반야경(般若經)』을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문수보살은 모든 중생이 깨달아서 교화하려는 보리심(菩提心)을 낼 수 있게 하는 10대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화엄경』에 의하면 문수보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서원과 실천’의 행원(行願)으로 유명한 보현(普賢)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이다. 모든 부처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문수보살이 미래에 성불하여 보견여래(普見如來)가 될 것이라는 설도 있다. 문수보살의 모습은 오른손에 지혜의 칼을, 왼손에 푸른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위엄과 용맹의 상징인 사자를 타거나 경전을 손에 들기도 한다. 신라에 문수신앙을 소개한 이는 자장(慈藏, 590~658)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자장이 중국 당에 유학하여 문수보살의 상주처로 알려진 오대산에 갔을 때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이때 문수보살이 자장에게 “너희 국왕(선덕여왕)은 인도의 찰제리종(刹帝利種: 크샤트리아) 출신으로 이미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아서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동이족(東夷族)과는 다르다.”라고 했다고 한다. 자장은 643년(선덕여왕 12) 신라로 돌아와 선덕여왕의 지원을 받아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교단 체제를 정비했으며, 황룡사(皇龍寺)에 9층탑을 세울 것을 건의하였다. 자장 이후 문수보살 신앙이 신라에 퍼지면서 경흥(憬興) 등이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강원도 오대산이 문수신앙의 성지로 부상하여, 왕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5만 보살의 진신을 만났다는 일화가 있다. 고려시대에도 문수보살과 함께 수행한 고승 3인의 설화가 전하며, 공민왕 대 정국을 운영한 신돈(辛旽, ?~1371)이 문수신앙과 관음신앙을 중시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문수보살에게 백일기도를 하여 병이 나았다는 기록 등 많은 사례가 있다. 한국의 대표적 문수도량은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와 상원사, 문수원(文殊院)이었던 춘천 청평사(淸平寺)를 들 수 있다. 문수신앙을 중시하는 사찰에는 문수전(文殊殿)이 별도로 있기도 하다. 또한 사찰 대웅전(大雄殿)의 석가불 왼쪽에 문수보살상이 봉안된 경우가 많다.
· 집필자 : 김용태

용례

  • 왕이 연복사에 행차하시어 크게 문수법회文殊法會를 열었다. 이때 불전에 여러 비단을 묶어 수미산須彌山을 만들고 산을 빙 둘러 촛불을 켰는데 초의 크기는 기둥만 했고 높이는 한 길이 넘었으며 밤이 대낮처럼 밝았다. 실로 만든 꽃과 채색 찬란한 봉황은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폐백으로 오색 비단 열여섯 묶음을 썼으며, 선발된 승려 300명이 수미산을 안고 돌면서 불공을 올리니 범패 소리는 하늘을 진동하였다. 일을 집전한 사람도 무려 8천여 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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