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총남종 |
|---|---|
| 한자 | 總南宗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총지종, 지념업, 남산종, 율종, 선종 |
| 연도 | 1407년 |
| 시대 | 조선 초기 |
| 관련인물 | 혜통, 자장, 태종 |
조선 초기 총지종과 남산종을 합친 불교 종파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의하면, 1406년(태종 6)에 한국불교 11개(혹은 12개)의 종파 명칭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총지종(摠持宗)과 남산종(南山宗)이 있었다. 총남종은 1407년(태종 7)에 이 총지종과 남산종이 통합된 종파다.
총지종(摠持宗)은 밀교 계통의 종파로서, 혜통(惠通) 국사에 의해 692년 개종된 이후 신라와 고려에 전파되었다. 고려에서는 ‘지념업(持念業)’이라고 하였으나, 조선초에는 ‘총지종(摠持宗)’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지념(持念)’이란, 구밀(口密)로서 진언다라니(眞言陀羅尼)를 염송(念誦)하고 삼매(三昧, samādhi)에 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총지(摠持)’란, ‘다라니(dhāraṇi)를 지닌다’는 것으로, 선법으로 악법을 능히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남산종(南山宗)은 계율 계통의 종파로서, 당(唐) 도선(道宣, 596~667)에게 영향을 받은 자장(慈藏, 590~658)에게서 비롯되었다. 도선은 『사분율(四分律)』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율종을 일으켰는데, 종남산(終南山)에 주석했기 때문에 남산종이라고 한다. 자장은 신라에 귀국하여 『보살계본(菩薩戒本)』을 가르치고 수계(受戒) 의식을 정비하여 교단을 정비하였다. 후에 고려 의천(義天, 1055~1101) 관련 기록에서는 계율업(戒律業)이라고 하였다.
1406년(태종 6)에는 총지종과 남산종이 별도 종파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듬해에 두 종파를 통합하여 총남종(摠南宗)으로 만들었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조치와 함께, 고려 대부터 이어져 온 자복사(資福寺) 88개를 명산의 사찰로 대체하도록 하였다. 총남종에는 8개 사찰(강음 천신사, 임진 창화사, 삼척 삼화사, 화순 만연사, 나주 보광사, 창평 서봉사, 인제 현고사, 계림 천왕사)이 새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이루어진 통합교단 정책에 따라 총남종의 운명도 곧 바뀌게 되었다. 밀교 계통의 총지종과 계율 계통의 남산종을 강제 통합하였고, 1424년(세종 6)에는 이마저도 조계종‧천태종과 함께 선종으로 다시 통합되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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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다시 總南宗을 禪宗으로 하고 中神宗을 敎宗으로 함과 가틈은 佛敎의 敎理와 實際를 政治家가 제 마음대로 左右한 것이라고보지 아니할 수가 업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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