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오교구산 |
|---|---|
| 한자 | 五敎九山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오교양종, 교종, 선종, 한국불교종파 |
| 시대 | 신라 중대 ~ 고려 전기 |
| 관련장소 | 경복사, 통도사, 분황사, 부석사, 금산사 등 |
| 관련인물 | 보덕, 자장, 원효, 의상, 진표 등 |
교종의 5개 종파와 선종의 9개 문파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
신라중대 이후부터 고려 전기까지 존재하였다고 하는 ‘교종의 5개 종파’와 ‘선종의 9개 문파’를 말한다. 고려 중기에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한 후에는 ‘오교양종(五敎兩宗)’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먼저,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오교는 신라 중기에서 말기까지 성립한 교종의 5개 종파를 말한다. 선덕여왕 대(632~647) 자장(慈藏)이 통도사에서 설립한 계율종(戒律宗), 태종무열왕 대(654~661) 보덕(普德)이 경복사에서 설립한 열반종(涅槃宗), 문무왕 대(661~681) 원효(元曉)가 분황사에서 설립한 법성종(法性宗)과 의상(義湘)이 부석사에서 설립한 화엄종(華嚴宗), 경덕왕(742~756) 대 진표(眞表)가 금산사에서 설립한 법상종(法相宗)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구산은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에 걸쳐 성립하였다는 선종의 9개 문파를 말한다. 여기에는, 홍척(洪陟)의 실상산문(實相山門),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智山門), 범일(梵日)의 사굴산문(闍崛山門), 혜철(惠哲)의 동리산문(桐裏山門), 무염(無染)의 성주산문(聖住山門), 철감(哲鑑)의 사자산문(師子山門), 도헌(道憲)의 희양산문(曦陽山門), 현욱(玄昱)의 봉림산문(鳳林山門), 이엄(利嚴)의 수미산문(須彌山門)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와 다른 견해도 있다. 첫째, ‘종파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 신라시대에는 승정(僧政)이 일원화되었기에 종파로 발전하지 못하고, 9세기가 넘어서야 비로소 종파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둘째, ‘오교(五敎)의 의미’에 대해서는, 교종의 5개 종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종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한다. 셋째, ‘선종의 9개 문파와 조사의 설정’에 대해서, 이들은 실제로 고려 후기에 확립된 것이기에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오교구산설’은 오늘날 학계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종파 문제에 관해서 명확한 의견을 제시한 점, 그리고 오랫동안 학계의 지지를 받아 온 점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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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게서 한問題가 잇는 것은 朝鮮佛敎史를 硏究한 學者間에는 朝鮮佛敎는 古代에 五敎九山時代에 六宗이 對立되고 五敎兩宗時代에 七宗이 對立하고 또는 七宗十二派가 對立되고 禪敎兩宗時代에 兩宗이 對立되고 兩宗時代에 禪宗이 獨立이라 이 가운데에 禪宗獨立이라는 말은 宣廟 以後에는 敎宗은 自然히 滅亡되고 禪宗만 獨立이라한다。이 말은 어느 現史實과 意味로 보면 매우 不適當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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