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서당화상비 |
|---|---|
| 한자 | 誓幢和尙塔碑 |
| 유형 | 역사 |
| 키워드 | 원효, 원효대사비, 십문화쟁론, 송고승전, 삼국유사 |
| 연도 | 800~808년 |
| 시대 | 신라 애장왕 대 |
| 공간 | 경상북도 경주시 내동면 |
| 관련장소 | 고선사 |
| 관련인물 | 설중업 |
통일신라시대 원효를 추모하기 위해서 세운 탑비
신라 애장왕(800~808) 대에 설중업(薛仲業)이 원효가 이루어 놓은 큰 업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탑비이다. 다른 이름으로 원효대사비(元曉大師碑), 고선사서당화상비(高仙寺誓幢和尙碑)라고도 한다.
이 비는 원효의 후손인 설중업이 779~780년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당시 실권자인 각간(角干) 김언승(金彦昇: 憲德王)의 후원으로 건립하였다. 이 비는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되었다. 하단부는 총독부에 근무하는 나카자토 이주로(中里伊十郞)가 1915년 월성군 냇가에서 발견하였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상단부는 석용식(昔庸湜)이 1968년 경주시 농가에서 발견하였는데,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비는 세 조각으로 되어 있는 ‘하단부’는 세로 91cm, 가로 94cm, 두께 24cm, 글자 크기 1.8cm이고, 한 조각으로 되어 있는 ‘상단부’는 세로 45cm, 가로 52cm, 두께 24cm, 글자 크기 1.8cm이다. 비문의 찬자(撰者)는 성명 미상의 승려이고, 서자(書者) 역시 미상이며, 각자(刻者)는 급찬(級飡) 고금□(高金□)이다. 글씨는 구양순체로 추정되는 행서(行書)로, 모두 33행에 각각 61자(字)이며, 전형적인 4・6변려체 문장이다.
이 비는 전체적으로 “① 처음 부분: 제액, 찬자, 서자, 각자, ② 도입부: 2행 처음~3행, ③ 본문: 3행~28행, ④ 명(銘): 28행~32행, ⑤ 후기: 32행~33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③ 본문’에서는 대사가 태어나 학업과 수행에 몰두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어 『십문화쟁론』을 비롯한 여러 저서와 신이한 방식으로 교화하는 장면을 보여 주며, 끝으로 나이 70세에 입적하는 모습과 탑비를 건립하게 된 과정을 밝히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인 원효에 대한 직접적인 사료는 실제로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당화상비는 『송고승전』, 『삼국유사』 등과 함께 원효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 집필자 : 불교백과1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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