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홍법우 |
|---|---|
| 한자 | 弘法友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봉선사, 홍월초, 운허 용하, 이재복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일제강점기 |
| 간행연도 | 1938년 |
| 간행처 | 양주군 (봉선사) |
1938년 봉선사 내 홍법강우회에서 간행한 잡지
1938년에 봉선사 불교전문강원(홍법강원)의 학인들이 조직한 홍법강우회(弘法講友會)에서 간행한 회지(會誌)이다.
잡지의 제목 ‘홍법우’는 홍법강원의 학우를 일컫는 말이다. 『홍법우』는 1938년 3월 12일에 비매품으로 제1호가 간행되었는데, 더 이상 출간되지 못하고 종간되고 말았다. 홍법강원은 홍월초(洪月初, 1858~1934)가 입적하면서 남긴 유촉(遺囑)에 의해 설립된 강원이다. 홍월초는 자신의 재산인 2만 6천여 평의 토지를 봉선사에 기증하고 강원을 설립할 것을 당부했다. 그의 「유촉서」와 봉선사 사중의 「유촉봉답서(遺囑奉答書)」가 잡지의 끝에 첨부되어 있다. 「유촉서」에는 특별히 운허(耘虛) 이용하(李龍夏, 1892~1980)에게 법물(法物)로 전해 준 토지를 언급하였는데, 법맥의 전승자로 이용하를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편집 겸 발행인은 이재복(李在福, 1918~1991)이다. 그는 갑사 출신으로 잡지 발행 당시 사교과에 재학 중인 21세 젊은이였다. 『홍법우』는 강원의 강주 이운허를 좌장으로 하고 홍법강우회의 임원들이 실무 주체가 되어 간행되었고, 그중 문예부 위원이었던 이재복이 편집을 맡았다.
잡지의 편제 및 내용은 먼저 강우회의 「강령(綱領)」과 강원의 「원훈(院訓)」이 서두에 제시되고, 권두언에 이어서 유명 인사 및 강우회 학인들의 논설이 다수 게재되었다. 또 학인들의 문예 작품도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유명 인사로는 권상로, 김영수, 김태흡, 허영호 등 대학승 내지 중앙불전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끝에는 홍법강우회의 임원 명단과 강원의 원칙(院則) 전문이 게재되어 있다. 특히 「전조선 강원 학인 명부」가 첨부되었는데, 당시 32개처의 강원과 662명의 학인들이 있었음을 전한다.
잡지의 판권 부분에는 「편집실 후문」이 실렸다. 이를 통해 봉선사 평의원회에서 160원을 지원해 주었고, 잡지의 간행에 감사를 맡고 있던 김기홍(金基弘)의 도움이 컸음을 알 수 있다. 잡지는 비록 제1호를 끝으로 종간되었지만, 홍법강우회는 1943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홍법우』는 봉선사 강원 학인들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자료임과 동시에, 일제강점기 불교 강원 및 학인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