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해동불보 |
|---|---|
| 한자 | 海東佛報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조선불교월보, 박한영, 최동식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일제강점기 |
| 간행연도 | 1913~1914년 |
| 간행처 | 경성 |
1913~1914년 조선선교양종 삼십본산주지회의원의 기관지
『조선불교월보』를 계승하여 해동불보사에서 새로 간행한 조선선교양종 삼십본산주지회의원의 기관지이다.
삼십본산주지회의원의 기관지였던 『조선불교월보』(이하 『월보』)는 1913년 8월 제19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이름만 바뀌어 『해동불보』(이하 『불보』)가 나왔다. 운영 주체와 편집 겸 발행인, 전반적인 편제 구성은 『월보』의 후기 양상과 동일하다. 해동불보사의 사장은 박한영(朴漢永), 편집 실무는 최동식(崔東植)이었다. 『불보』는 1914년 6월 통권 제8호까지 간행되었다.
기관지가 단지 이름만 바뀌어 3개월 만에 재간행된 사유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사고(社告)」에 ‘소분(小分) 관계’로 잡지의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 걸 보면, 잡지사 운영에 작은 갈등 요소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창간호 서두에는 「본보의 규약」을 공지하여 잡지의 지향점을 표명했는데, 대승불학(大乘佛學)을 천화(遷化)하는 것을 종지로 삼고, 순수한 학리(學理)를 탐구하고 중생의 덕성을 계도하며, 정치적 발언과 시사(時事) 득실은 절대로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즉 대승불교의 교학을 연구하고 확산하겠다는 학술 잡지로서의 정체성을 표방한 것이다. 지난 『월보』가 폭넓은 독자층을 상정하고 다양성을 지향했다면, 『불보』는 상대적으로 교학과 불교사 탐구라는 영역에 국한된 경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무게감 있는 교학자들의 글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학생 및 신진 세대의 생동감 있는 글은 드물다. 특히 편집을 맡은 박한영과 최동식의 글이 과반수여서 대중성을 지향하는 근대 잡지의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잡지의 편제는 『월보』와 대동소이하다. 대체로 ‘논설부-학술부-전기부-사림부-관보초-잡화포’의 순서로 편집되었다. 는 불교 청년의 교육을 강조하는 등 불교계의 시대적 사무를 다루었고, 는 선학과 교학을 주제로 박한영과 유경종(劉敬鐘)의 글을 게재하였다. 는 불교사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였고, 는 편지글이나 투고문, 한시 등 문예 작품이 게재되었다. 특히 언문부는 불교 가사인 「권왕문」 등이 게재되었는데, 잡지 전체가 한문 현토체인 가운데 순한글로 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불보』는 일정한 수준을 지닌 불학자(佛學者)를 주요 독자층으로 설정하여 대승 교학의 연찬과 불교사 자료의 발굴이라는 수준 있는 학술 성과를 내고자 했다. 하지만 『월보』와 마찬가지로 한문체로 이루어졌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지 못해 대중 확산에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지적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