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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보림

한글축산보림
한자鷲山寶林
유형문헌
키워드통도사, 김구하, 조음
판본활자본
시대일제강점기
간행연도1920년
간행처경남 양산
1920년 통도사에서 발간한 불교 잡지
통도사 주지 김구하(金九河, 1872~1965)가 설립한 축산보림사에서 1920년 1월부터 10월까지 통권 6호가 간행된 월간지이다. 잡지명을 한때 ‘취산보림’으로 읽었으나 영축산 통도사, 축산 김구하의 예에 근거하여 현재는 ‘축산보림’으로 읽는다. 김구하는 1911년부터 1925년까지 통도사 주지를 지낸 인물로, 동시에 1910년대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1917~1918) 및 중앙학림 학장(1918)을 역임한 고승이다. 1918년 위원장을 사임하고 통도사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축산보림사를 설립하고 『축산보림』을 창간했다. 그때까지 간행된 불교 잡지가 대부분 교단의 기관지였던 반면, 『축산보림』은 지방 본산이 주체가 되어 간행한 최초의 불교 잡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창간호의 발행사에는 “문명사회에 지식이 필요하고, 그 지식을 공급하는 기관으로 신문 잡지 등을 발행하는 기관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상응하여 우리 사회의 행복을 구하고자 한다”라고 발행 목적을 밝혔다. 지방 본산이 간행하는 작은 규모의 잡지였지만, 불교의 확산을 도모하면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했던 포부와 현실 지향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축산보림사의 직원은 사장 김구하, 편집인 이종천(李鍾天), 주필 박병호(朴秉鎬), 기자 강성찬(姜性璨), 서기 강정룡(姜正龍) 등 5인이었다. 이종천은 옥천사 출신으로 통도사의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인재로서, 통도사 및 김구하와의 인연으로 귀국 후 통도사로 내려와 잡지 발행을 책임졌던 것으로 보인다. 박병호는 3.1운동 직후 울산청년회를 조직해 민족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통도사 주지 김구하가 총책임을 맡고, 미래 세대의 주역이 될 불교 청년들이 잡지 발간의 실무를 담당한 것이다. 필진들 또한 김영주, 이도현, 김진목, 문세영, 조학유 등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축산보림』은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미래지향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통도사 불교청년회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통도사 불교청년회는 제5호부터 잡지사를 직접 운영한 주체가 되었다. 하지만 『축산보림』은 제6호를 끝으로 종간된다. 불교청년회가 후속 잡지로서 두 달 후에 『조음(潮音)』을 새로 창간하기도 했지만, 현재 확인되는 것은 창간호뿐이다. 잡지 간행이 멈춘 구체적인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당시 지방 사찰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사정이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축산보림』은 지방 사찰에서 간행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 청년들이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교의 전국적 확산과 함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던 잡지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 집필자 :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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