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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총보

한글조선불교총보
한자朝鮮佛敎叢報
유형문헌
키워드불교진흥회, 불교옹호회, 이능화
판본활자본
시대일제강점기
간행연도1917~1921년
간행처경성
일제강점기 삼십본산연합사무소에서 발행한 기관지
1917년 3월부터 1921년 1월까지 삼십본산연합사무소가 발행한 기관지이다. 삼십본산연합사무소는 1915년부터 1916년 사이에 산하 포교 단체인 불교진흥회를 통해 기관지 『불교진흥회월보』와 『조선불교계』를 연달아 간행한 바 있다. 승속(僧俗)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직이었던 불교진흥회는 회주와 부회주 간의 갈등과 승속의 부조화 속에서 1916년 1월에 신도 중심의 단체로 전환된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간행된 『조선불교계』는 통권 3호를 끝으로 1916년 6월에 폐간되는데, 그해에 더 이상 기관지의 발행은 없었다. 불교진흥회 또한 동력을 잃고 폐지 절차를 밟게 되자, 1917년 1월에 개최된 삼십본산 주지총회에서는 위원장으로 통도사 주지 김구하(金九河)를 선출하고 새로운 포교 단체의 조직과 기관지의 발행을 결의했다. 그래서 출범한 포교 단체가 불교옹호회이다. 이전 불교진흥회의 주축이 문장가, 철학가, 교육가, 수학가, 의학가 등 다양한 분야의 거사들로 이루어졌다면, 불교옹호회는 이완용(李完用), 권중현(權重顯) 등의 친일 귀족이 대거 유입되었다는 점이 특색이다. 불교옹호회는 1917년 2월 21일에 총독부로부터 인가를 받는다. 한편 새로운 기관지로 『조선불교총보』(이하 『총보』)가 1917년 3월에 창간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은 기존 기관지와 동일하게 이능화(李能和)가 맡았다. 하지만 발행소는 불교옹호회가 아닌 삼심본산연합사무소로 되어 있다. 불교진흥회 때를 생각하면 잡지 발간에 불교옹호회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능화가 불교옹호회의 이사라는 점 등을 제외하면 그렇게 밀접한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총보』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1920년대 들어 새로운 불교 단체의 태동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단체는 조선불교회, 조선불교청년회, 불교유학생회 등이었는데, 『총보』는 이들의 취지서, 강령, 회규 등과 함께 교계 혁신을 주장하는 기사들도 수록하였다. 하지만 『총보』는 제22호에서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말까지 잡지를 간행할 수 없다는 「사고」의 공지를 끝으로 더 이상 간행되지 못했다. 『총보』는 기존 잡지와 달리 편목의 구분 없이 매호 10여 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편제는 대략 ‘논설-학술-역사 자료-불교 상식’의 체제를 보인다. 기존 잡지와 크게 차별되는 점은 1918년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지광(李智光), 이혼성(李混惺), 김정해(金晶海)를 시작으로 젊고 유능한 필진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혼성과 김정해는 차례로 『총보』의 주필이 되어 잡지의 간행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총보』는 1910년대 불교 교단의 마지막 기관지로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신진 세대들을 포용하였고, 새로운 불교 단체의 태동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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