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조선불교월보 |
|---|---|
| 한자 | 朝鮮佛敎月報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원종, 각본산주지회의원, 권상로, 박한영, 최동식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일제강점기 |
| 간행연도 | 1912~1913년 |
| 간행처 | 경성 |
1912년 불교 교단 내 조선불교월보사에서 간행한 기관지
1912년부터 1913년까지 한국불교 교단이 운영한 조선불교월보사가 발행한 중앙 기관지이다.
근대 최초의 종단은 1908년에 설립된 원종(圓宗)이다. 그런데 원종의 종정 이회광(李晦光, 1862~1933)이 일본불교 조동종과 맹약을 맺으려 했던 사건을 계기로 한국불교 수호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결과 1911년 임제종(臨濟宗)이 설립되었다. 불교 교단은 이렇게 양분되어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다가 1912년에 총독부의 명령으로 모두 폐지되고, 사찰령 체제 아래 삼십본산으로 재편된다. 이때 교단의 중앙 기구로서 조선선교양종 각본산주지회의원이 설립되었다.
앞서 원종은 1910년에 근대 최초로 잡지 『원종』(통권 2호)을 발행했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서 간행된 원종의 기관지가 바로 『조선불교월보』(이하 『월보』)이다. 『월보』는 1912년 2월 창간호로부터 이듬해 8월 제19호까지 간행되었다. 발행소는 조선불교월보사였는데, 그 운영 주체는 앞서 언급한 교단 내 정세 변화에 맞춰 제4호까지는 원종 종무원, 제5호부터는 각본산주지회의원으로 변화가 있었다. 판권에 보이는 전체 권호의 편집 겸 발행인은 권상로(權相老)이다. 하지만 그의 「연보」에 따르면, 1912년 9월에 조선불교월보사 사장을 사임하고 낙향했다는 소개가 있고, 『월보』에도 그를 그리워하며 쓴 최동식(崔東植)의 한시가 수록된 것을 보면, 제8호부터 발행인이 교체됐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월보사의 사장은 박한영(朴漢永, 1870~1948)이 맡았고, 편집 실무는 최동식이 담당했다.
창간호에 실린 「조선불교월보발행취지서」에는 종교 중에 불교가 제일인데, 지난 수백 년간 억압을 거친 후 종교 경쟁 시대를 맞아 침묵으로 안일하게 앉아 있을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드러나 있다. 적어도 잡지의 발행에 다른 종교에 대한 인식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본보의 특색」을 게재했는데, “승려계의 모범, 학생계의 양사(良師), 수증가(修證家)의 보잠(寶箴), 종교가의 명감(明鑑), 한묵가(翰墨家)의 호우(好友)”라고 하여 각계각층을 독자층으로 끌어안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잡지의 편제는 , , , , , , 등으로 구성되었다. 은 편집인이었던 권상로, 박한영, 최동식의 글이 많이 보이며, 잡지의 지향 및 불교계의 시대적 사무 등 시사성 있는 글이 주를 이룬다. 은 비문 및 비명 등의 원전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한 지면이다. 는 한국불교사뿐만 아니라 인도로부터 동아시아에 전파된 불교의 역사를 두루 소개하고 있다. 은 시대를 대표하는 강백, 선사, 학자의 교학적 논설을 수록하였다. 여기에는 중국이나 일본 학자의 대표적 논저를 번역하여 연재하기도 했다. 에는 고승의 전기를 수록했고, 에는 개혁론 또는 기타 시론 등이 게재되었다. 은 문예 작품을 수록한 지면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간행된 『월보』의 형식과 내용들은 전통적 교학 연구로부터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근대 불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잡지 편제의 미분화와 한문체로 된 기사는 다양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