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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계

한글조선불교계
한자朝鮮佛敎界
유형문헌
키워드불교진흥회월보, 이능화
판본활자본
시대일제강점기
간행연도1916년
간행처경성
1916년 불교진흥회에서 기관지로 발행한 잡지
1916년에 삼십본산연합사무소의 포교 단체인 불교진흥회가 간행한 기관지이다. 잡지는 1916년 4월 창간되어 동년 6월에 통권 3호를 끝으로 종간되었다. 앞서 불교진흥회는 1915년 3월부터 12월까지 통권 9호의 『불교진흥회월보』를 간행한 바 있다. 따라서 4개월 만에 제목만 바꾸어 다시 기관지를 간행한 셈이다. 두 잡지는 발행 기관도 같고, 편집 겸 발행인도 이능화(李能和)로 같다. 1916년 1월 2일 개최된 제5회 주지총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불교진흥회 사건’으로 진흥회의 부회주 강대련(姜大蓮)이 임시 사무를 대변한다는 사정이 전한다. 연구에 의하면, 회주 이회광(李晦光)과 부회주 강대련이 총독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교권 다툼을 벌였다고 하는데,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한편 1월 5일에는 총독부 내무부 장관인 우사미(宇佐美)의 훈유가 있었다. 그 내용 중에는 불교진흥회와 관련된 것도 있었는데, 회원 모집 방식을 신심이 있는 자로 할 것이며, 회칙 개정 전에는 부회주(강대련)가 일체 사무를 대변하고, 승려와 신사(信士)의 연합은 인정할 수 없으니 진흥회를 신도에게 위임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불교진흥회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부회주인 강대련이 사무를 대변하게 되었고, 진흥회는 승려가 배제된 채 신도 중심의 단체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불교진흥회의 어수선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기관지는 강제로 폐간되었고, 간행 주체가 교체되면서 제명을 바꾸어 『조선불교계』가 간행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발간 주체가 바뀌었지만, 잡지의 구성과 필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교진흥회월보』의 양상과 동일하게 여전히 이능화와 양건식(梁建植)의 글이 많이 보이며 편제도 비슷하다. 주목되는 부분은 『불교진흥회월보』에 글을 많이 기고했던 최동식(崔東植)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그 자리를 권상로(權相老)가 메꾸고 있다는 점이다. 권상로는 와 , 란 등에 다수의 글을 발표했다. 『불교진흥회월보』의 종간 이후 4개월의 공백과 발간 주체의 변화가 있었지만, 『조선불교계』는 『불교진흥회월보』와 상호 연속성을 지니는 잡지였다. 특히 주요 필자로 재가 불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은 당시 불교학의 확산과 불교 대중화 운동의 양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 집필자 :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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