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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불교

한글조선불교
한자朝鮮佛敎
유형문헌
키워드조선불교대회, 조선불교단
판본활자본
시대일제강점기
간행연도1924~1936년
간행처경성
1920~30년대 조선불교사에서 간행한 친일 불교 단체 ‘조선불교단’의 기관지
일본인과 친일 조선인 불교 신도들이 조직한 불교 외호 단체인 조선불교단(朝鮮佛敎團)이 조선불교사(朝鮮佛敎社)를 세워 간행한 기관지이다. 현재 1924년 5월 창간호부터 1936년 6월 제121호까지 확인되며, 이후의 발간 현황은 알 수 없다. 1~12호, 101~121호는 타블로이드판이고, 13~100호는 국배판으로 인쇄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은 일찍이 조선에 건너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발행을 주재하고 경무국 촉탁으로 있던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였다. 발행 주체인 조선불교단은 1920년에 세워진 ‘조선불교대회’가 1925년 5월에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설립된 단체이다. 조선불교대회는 1919년 3.1운동 이후 부임한 사이토 총독이 무단 통치에서 문화 정치로 정책을 전환하고 친일 세력을 육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는데, 남대문에서 조지야(丁子屋) 주식회사를 경영하던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와 나카무라 겐타로, 친일 조선인 이원석(李元錫) 등이 주축이 되어 창립되었다. 이후 조선불교대회의 회장은 친일파 권중현(權重顯), 이윤용(李允用, 이완용의 형) 등이 역임하였다. 조선불교대회는 1924년 봄부터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 과정에서 기관지 『조선불교』를 창간하였다. 그리고 『조선불교』는 조선불교대회가 재단법인 조선불교단으로 인가를 받으면서 종래 타블로이드판에서 국배판으로 바뀌고, 3~4면씩 실리던 한글 기사도 일본어 전용으로 전환된다. 조선불교단의 목적은 “조선에 있어서 불교의 진흥 보급을 도모하고, 인심을 교화 선도하며, 민중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은 친일 세력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조선불교단의 초대 단장은 조선불교대회 회장 이윤용이 맡았고, 고문에 일본인들과 함께 박영효‧이완용‧권중현 등 친일 조선인이 포진하였다. 『조선불교』에 소개된 조선불교단의 역원(고문·교무고문·상담역·교무상담역·이사·감사·평의원)을 보면, 한국인이 53명, 일본인이 144명이다. 일본인의 비율이 한국인보다 약 3배가 많고, 그 기관지가 일본어 전용으로 만들어졌던 점을 생각하면, 조선불교를 진흥하고 보급하기 위해 창립됐다는 조선불교단의 취지는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조선인을 친일 세력화하기 위한 눈가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불교단은 각종 강연회와 구호사업을 실시하고, 조선불교의 활성화와 일본불교와의 교류 협력을 위해 조선불교대회를 개최하는 등 조선인의 환심을 사려는 사업을 전개했다. 『조선불교』는 조선불교단의 선전지로서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의 불교 교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임과 동시에, 친일파를 연구하는 데 기초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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