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신생 |
|---|---|
| 한자 | 新生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불교』, 김법린, 장도환, 한용운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대한민국 |
| 간행연도 | 1946년 |
| 간행처 | 서울 |
해방 이후 불교 교단에서 발행한 기관지
해방 직후 불교 교단 총무원 집행부가 설립한 신생사(新生社)에서 발행한 기관지이다.
불교계는 1945년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태고사에서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했다. 승려대회는 총독부로부터 인가받았던 ‘조선불교조계종’이라는 종명과 태고사법 및 본말사 제도를 폐지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종명으로 ‘조선불교’를 표명하고 교구제(敎區制)를 채택하였으며, 교정에 박한영(朴漢永), 총무원장에 김법린(金法麟)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교단 기관지를 발간하기로 하고 1946년 3월 제1회 중앙교무회의에 맞춰 『신생』 창간호를 간행하였다. 편집 겸 발행인은 장도환(張道煥)이 맡았다. 장도환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불교 청년운동을 하였고, 유학 시절 『금강저』의 발행과 일제강점기 말 『(신)불교』의 편집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 경험으로 『신생』의 편집도 책임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생』은 「창간사」에서 일제강점기의 교단 기관지 『불교』를 대신하는 잡지임을 밝혔다. ‘신생’이라는 제목은 해방 이후 새로운 불교 교단의 탄생을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1946년 11월 제2회 중앙교무회의에서 이름을 『불교』로 고쳐 복구한다고 결의하여 통권 제4호로 종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불교사(佛敎社)에서 『불교』 창간호가 간행된다. 결국 『신생』은 일제강점기 불교 교단의 기관지를 해방 이후에 계승하는 과정에서 잠시 간행되었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짧은 간행 기간에도 불구하고, 기관지로 간행한다는 분명한 동기와 함께 불교계의 식민지성을 탈피하고자 했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는 3.1운동이나 만해 한용운과 관련한 기사들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장도환의 「36년간의 악몽기」, 최범술(崔凡述)의 「기미운동과 독립선언서」, 「고 만해 선생의 대기(大朞)를 당하야」와 김법린의 「삼일운동과 불교」, 김정설(金鼎卨)의 「고 한용운 선생 추도문」 등이 있다. 이 외에 다솔사 장서 중에 있던 단재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사」가 연재되기도 했다. 이처럼 『신생』은 해방 직후 한용운의 2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고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을 전개했다. 이는 해방 후 불교 교단이 식민지성을 벗어던지고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했던 의지를 기관지 『신생』에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신생』은 해방 직후 펴낸 불교 교단의 기관지로서, 어수선한 해방기의 교단 활동 내용을 들여다보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