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불일 |
|---|---|
| 한자 | 佛日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조선불교회, 이능화, 박한영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일제강점기 |
| 간행연도 | 1924년 |
| 간행처 | 경성 |
1924년 조선불교회에서 간행한 불교 잡지
1924년 조선불교회 내 불일사(佛日社)에서 간행한 회보(會報) 성격의 잡지이다.
조선불교회는 1920년에 박한영(朴漢永), 이능화(李能和) 등이 중심이 되어 동대문 밖 청량사에서 결성한 거사불교 단체이다. 이 단체에는 지난 10여 년 동안 불교 국학운동 및 불교 문화운동을 전개했던 문화계, 학술계 인사들이 동참하고, 1910년대 말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신진 불교 청년들이 참여하였다. 『불일』은 교단이 아닌 일반 단체가 간행한 잡지로서 불교 포교의 대중 확산과 참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1924년 7월에 창간되어 같은 해 11월에 통권 2호로 종간되었다는 점에서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조선불교회가 조선 불서(佛書)의 간행과 번역 사업을 시도했던 점은 주목된다. 조선불교회는 1923년부터 이능화가 주도하고 일본 유학생 출신의 정황진(鄭晄震)이 실무를 담당하여 조선불교총서간행회를 조직하고 불서 간행 예정 서목 533종을 작성한 바 있다. 총서 간행 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때 간행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회보지 『불일』의 발행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불일』의 편집 동인으로는 제1호에서 운초 김익승, 석전 박한영, 용성 백상규, 정산 백우용, 해파 김세영, 국여 양건식, 상현 이능화, 육당 최남선, 해원 황의돈, 퇴경 권상로 등 10명의 이름이 확인되며, 제2호에서는 김세영이 제외되고 취농 오철호가 추가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은 제1호는 김세영(金世暎)이, 제2호는 백우용(白禹鏞)이 맡았다. 창간호에 실린 「불일사 사우회 규약」을 보면, 불일사는 회원제로 운영되며 회비로 자금을 확보하고 『불일』을 배포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상회원의 1개월분 회비가 15전인데 잡지의 정가가 20전이었던 것을 보면, 회비는 『불일』의 할인 구독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불일』이 구성하고자 했던 내용은 원고 모집 광고인 란에 잘 드러난다. 조선 사찰의 역사, 찬불가와 찬불시, 조선의 고조사(古祖師)와 거사 및 신녀의 신이한 행적, 조선 불교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안, 불교 포교당의 제도 개혁안 등이다. 찬불가와 찬불시, 신이담 등을 제시한 것은 기존 1910년대 잡지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권상로가 경전을 번역하여 순한글로 게재하고 있는 점도 대중 잡지로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불일』은 교단 외부에 설립된 대중 단체가 간행한 것으로서, 기존 거사불교 운동의 주축과 신진 문화계 인사들이 동참하고 한글의 사용에 적극적인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1910년대에 간행된 잡지에 비해 시대 변화와 새로운 감각을 잘 보여준 잡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