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불교신문 |
|---|---|
| 한자 | 佛敎新聞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불교신보, 권상로, 김정묵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대한민국 |
| 간행연도 | 1951~1952년 |
| 간행처 | 서울 |
1951~1952년 불교신문사에서 간행한 주간 신문
1950년 6.25 전란으로 인해 휴간되었던 『불교신보(佛敎新報)』의 속간으로서, 불교신문사가 이름을 바꾸어 발행한 주간 신문이다.
현재 정확한 창간일은 알 수 없고, 1951년 후반기부터 간행되어 1952년 1월호까지 총 4호가 확인된다. 사장은 권상로(權相老), 발행인은 장용서(張龍瑞), 편집인은 김정묵(金貞黙)이다. 김정묵은 앞서 간행되었던 『불교신보』의 편집 겸 발행인이었다.
제1호의 사설란은 속간을 발행하게 된 사정을 전한다. 본사 고문 박윤진(朴允進)과 사장 천하룡(千河龍) 양 씨가 작년(1950년) 7월 괴뢰군에게 피랍되고 기자 김주중(金周中)은 피살당했다는 상황을 전하며, 이들 3명 동지의 뜻을 잇고 지상계몽(紙上啓蒙)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속간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社告)란에는 과거 종단에 국한된 신문이던 것을 일반 대중으로 확대하기 위해 체제와 내용도 달리하고 이름을 고쳤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제2호에서 본지가 처음에 『불교신보』라는 명호로 김정묵 씨의 개인 간행물이었다고 밝히고 있어, 해방공간에 간행되었던 『불교신보』를 계승한 신문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제3호에서는 불교신문사의 사원 명단이 보인다. 상임고문은 당시 총무원장인 이종욱(李鍾郁)이며, 고문으로는 김법린(金法麟)·김동화(金東華)·이혼성(李混性) 등 14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질적인 사원으로는 사장(권상로)·부사장·주필(장용서)·총무국장·편집국장(김정묵)·업무국장·공무국장과 편집국 소속의 사회부장·조사부장·문화부장·포교부장이 있고, 기자는 3명이 있었다.
신문의 내용은 교정 방한암(方漢岩)의 열반 소식, 구하(九河) 대종사의 근황, 제10회 중앙교무회 소식 등 대체로 교단 소식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6.25 전란 중 불교계 피해 상황도 전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권상로의 「불교는 무신교」, 김정묵의 「불교입문론」 등 연재 글도 보인다. 제3호에 있는 「불교입문론」의 경우는 제목 옆에 ‘(14)’가 표기되어 있는데, 아마도 중단되었던 『불교신보』에 이어서 게재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란에서는 짤막하지만 당시 주요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불교신문』은 한국전쟁 당시 불교 교단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주요한 자료이다. 또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사찰과 승려의 명단이나 불교 언론 조직의 구성 및 보직을 맡은 이들의 명단도 파악된다는 점에서 당시 주요 인물에 대한 연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