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불교시보 |
|---|---|
| 한자 | 佛敎時報 |
| 유형 | 문헌 |
| 키워드 | 김태흡, 심전개발운동, 권상로 |
| 판본 | 활자본 |
| 시대 | 일제강점기 |
| 간행연도 | 1935~1944년 |
| 간행처 | 경성 |
일제강점기에 불교시보사에서 발행한 월간 신문
김태흡(金泰洽, 1899~1989)이 설립한 불교시보사에서 1935년부터 1944년까지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한 월간 신문이다.
1935년 8월부터 1944년 4월까지 총 105호가 발행되었다. 편집 겸 발행인 김태흡은 「창간사」에서 불교 단체의 기관지가 없는 현실을 타개하고,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에 일익이 되고자 하는 사명과 목적을 지니고 『불교시보』를 창간했다고 밝혔다. 심전개발의 보도지를 자임한 만큼 1937년까지 거의 매호에 심전개발과 관련한 사설을 비롯하여 강연회 일정 및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심전개발운동은 총독부가 조선인들을 일본 천황에게 복종하는 충량한 신민으로 만들고, 농촌진흥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농가의 경제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입안한 것이다. 총독부는 이 운동을 위해 종교계를 활용하였고, 그중에서도 오랜 전통을 지니고 신도들이 많았던 불교에 주목하였다. 김태흡은 심전개발운동을 위한 강연의 대표 연사였고, 『불교시보』는 그 기관지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후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는 시기에도 군국주의에 협조하고 황도불교(皇道佛敎)를 선양하는 취지의 글을 많이 발표했다는 점에서 친일을 지향했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불교시보』는 1930년대 중반 이후 불교계의 총본산 건설 운동 및 조선불교조계종의 창종과 관련한 소식과 함께 전국 본말사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불교 교리 및 사상, 기고문, 문예물 등도 다수 확인된다.
글을 가장 많이 게재한 사람은 김태흡이었다. 그는 다양한 필명으로 많은 글을 게재했는데, ‘김태흡’으로는 사설과 , ‘김소하(金素荷)’로는 , ‘석대은(釋大隱)’으로는 , ‘금화산인(金華山人)’으로는 , ‘김대은(金大隱)’으로는 등을 연재했다. 그 외에 권상로(權相老), 박윤진(朴允進), 강유문(姜裕文), 김경주(金敬注) 등이 주요 필진으로 참여했다. 특히 권상로는 「조선불교사개설」, 「조선사찰약고」, 「고승사화」 등 불교사 관련 글을 연재했는데, 1939년에 김태흡은 권상로가 연재했던 글을 모아 환갑 기념으로 단행본 『조선불교사개설』을 간행하기도 했다.
한편 김태흡은 불교시보사를 운영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1939년에 시보사가 있던 봉은사 포교당 응선암(應禪庵)의 대지에 대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여 경매를 당했던 것이다. 이때 ‘불교시보 후원회’가 조직되었다. 회장은 김취운(金翠雲), 부회장은 김동봉(金東峰), 간사장은 홍태욱(洪泰旭)이었고, 고문으로 강성인(姜性仁)‧박한영(朴漢永)‧김포광(金包光)‧이종욱(李鍾郁) 등이 있었다. 당시 불교계 대표 인사들이 『불교시보』를 후원했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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