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우란분재 |
|---|---|
| 한자 | 盂蘭盆齋 |
| 유형 | 의례민속 |
| 세부장르 | 의례, 민속(무형) |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음력 7월 보름에 치르는 합동 천도재
칠월 보름의 백중(百中)은 민간과 불교에서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날이다. 고된 여름 농사를 마무리하고 가을 추수를 앞둔 농한기의 축제일이자, 승려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이날을 호미씻이·머슴날이라 부르면서 잔치를 벌였다. 불교에서는 이날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부르며,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함으로써 그 공덕으로 고인을 천도하는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백중 기도·백중천도재라고도 부른다.
중국에서는 6세기경 양나라 무제(武帝, 464〜549)가 동태사(同泰寺)에서 우란분재를 연 이후 역대 제왕이 행하였고, 점차 백성의 주요 행사로 정착되었다. 중국에서 편찬된 『우란분경』 등에 따르면, 이날을 조상 천도의 날로 삼게 된 유래는 부처님의 십대제자인 목련존자(目連尊者)의 효심이 담긴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목련이 어느 날 천안통(天眼通)으로 어머니가 아귀 지옥에서 고통받는 장면을 목격하고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할 방도를 여쭙자, 안거가 끝나는 날 승려들을 청해 공양을 올리고 그 도력을 빌리면 7대 부모까지 삼악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 하였다. 목련은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렸고, 어머니는 한 단계씩 고통에서 벗어나 마침내 천상에 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1106년(예종 1)에 왕이 궁궐에서 우란분재를 열어 숙종의 명복을 빈 내용이 나온다. 이후 궁궐과 사찰에서 꾸준히 행해졌고, 조선 초기에도 태조가 흥천사에서 우란분재를 행한 기록이 있다. 『용재총화』에는 15세기의 풍습으로 “절에서 백 가지 꽃과 과일을 모아 우란분재를 베풀었다. 장안에 있는 비구니사찰에서는 더욱 성행하여 부녀자들이 곡식을 올리며 돌아가신 부모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다.
하루나 3일간 치르기도 하고, 7월 보름을 회향일로 하여 칠칠재로 치르는 사찰이 많다. 위패를 모신 영단에 공양물을 차려 놓고 일곱 차례 기도를 올린다. 마지막 칠재는 일반 천도재의 절차처럼 영가를 청하는 대령(對靈), 업을 정화하는 관욕(灌浴), 불단에 공양을 올리며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상단권공(上壇勸供), 영단에 제사를 지내고 불법을 들려주는 관음시식(觀音施食), 영가를 떠나보내는 봉송(奉送) 등으로 진행한다.
우란분재는 부모·조상과 먼저 떠난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불교 명절로 불자들에게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집필자 : 구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