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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도량

한글용왕도량
한자龍王道場
유형의례민속
키워드용왕청(龍王請)
세부장르의례, 민속(무형)
가뭄에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불교 법회
용은 바다의 우두머리이자 비를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 섬김의 대상이었고, 불교에서도 용을 호법신으로 수용하여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라고 하였다. 가뭄이 들면 부처님의 가피에 의지하고 호법룡(護法龍)의 힘을 빌어 비를 청하는 법회를 열었다. 가뭄은 큰 재난인 만큼 나라에서는 불법의 위력에 의지하였고, 사찰마다 이에 대한 대처 방안도 적극적이었다. 기우도량(祈雨道場)·운우도량(雲雨道場)·기우법석(祈雨法席)이라고도 한다. 용왕도량은 고려 때부터 근래까지 널리 행해졌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왕이 명하여 궁궐이나 특정 사찰에서 주로 3〜7일간에 걸쳐 개최하였다. 가뭄이 심할 때는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동시에 열도록 하였고, 각 사찰에서는 경내는 물론, 천지신명과 용왕의 힘을 빌고자 산악과 선상(船上)에서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1047년(문종 1)에는 문종이 담진(曇眞)에게 선(禪)을 강설하며 비를 기원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당시 백성들이 법회의식인 가구경행(街衢經行)을 본받아 각자 사는 마을에서 경전을 외우며 행진하였는데, 행렬이 궁궐의 서쪽 마을에 이르자 마침 비가 내렸다. 이에 왕이 쌀과 비단을 하사하면서 가구경행을 이어 가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1173년(명종 3)은 유독 가뭄이 심한 해로 곡식이 말라붙고 전염병이 돌아 굶어 죽는 백성이 많았다. 이에 4월 14일 무당을 모아 비를 빌고 문무백관을 파견해 산천 신령에게 비는 한편, 18일에는 평양 보제사(普濟寺)에 용왕도량을 열고, 26일에는 왕실의 기도도량인 신중원(神衆院)에서 비 오기를 기원하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비를 빌면서, 효험이 없으면 의식절차를 바꾸어서 신중도량·소재도량 등을 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나라에서 주관하는 기우도량이 백여 년간 지속되었다. 1454년(단종 2)에는 “승려를 모아 흥천사 사리각에서 기우하고, 동자를 모아 경회루 연못에서 석척(蜥蜴), 도마뱀 기우를 했다.”라고 기록하였다. 석척기우는 용을 대신하는 도마뱀(석척)을 병에 넣고, 동자들이 병을 두드리며 주문을 외워 용을 깨우는 기우제를 말한다. 절에서는 기우법회를, 연못가에서는 기우제를 동시에 지냄으로써 효험의 극대화를 꾀한 셈이다. 이후 나라에서 여는 용왕도량은 쇠퇴했으나, 마을과 사찰의 기우도량은 꾸준히 전승되었다. 야외에 괘불을 모신 가운데, 공동체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힘을 모으는 불교의례였다.
· 집필자 : 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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