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연등회

한글연등회
한자燃燈會
유형의례민속
세부장르의례, 민속(무형)
등을 밝혀 공동체의 바람을 기원하는 불교의식
보름에 불을 밝혀 밝음·풍요·벽사를 바라는 민간 풍습과 부처님께 등 공양을 올리는 불교의식이 만나, 연등을 매개로 한 전통축제가 고대로부터 전승되었다. 고려 때는 왕실에서 주도하는 국가의례로 정착되고, 조선 이후에는 사찰과 민간의 초파일 축제로 이어졌다. 부처님오신날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서 전승 역사가 깊어, 2012년 국가 무형유산 지정에 이어 202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연등회는 정월 대보름[上元], 2월 보름, 4월 초파일 등에 시행되다가 점차 초파일로 일원화되었다. 신라 때는 대보름에 왕이 황룡사로 행차하여 등을 구경한 기록이 전하듯이, 고대부터 사찰에서 대보름 연등이 행해지고 있었다. 고려 때는 불교에 뿌리를 둔 국가의례로 연등회·팔관회(八關會)를 개최해 왕권 강화와 사회 통합의 기능을 맡아 왔다. 고려 연등회는 대보름에 주로 행했고, 14일(소회)과 15일(대회) 이틀간 궁궐에서 군신이 참석한 가운데 백희가무(百戲歌舞) 공연과 대연회의식을 열었다. 소회에는 전반부를 마친 뒤 왕이 행렬을 이끌고 개경 봉은사로 행차하여 태조의 진영을 참배하는 행사가 핵심을 이루었다. 이틀간 개경 전역에 통금을 해제하고 등불을 밝혀, 곳곳에서 불야성을 즐기는 관등(觀燈) 행사와 함께 축제가 펼쳐졌다. 고려 말에는 초파일 연등회도 명절처럼 중요하게 여겼다. 초파일이면 집집이 등을 달았고, 아이들이 장대에 종이를 오려 붙인 깃발을 만들어 성안을 돌아다니며 쌀과 베를 구해 그 비용으로 삼았는데, 이를 ‘호기’라 불렀다. 이날 공민왕이 연등을 하고 아이들의 호기희(呼旗戲)를 구경한 뒤 포를 하사한 기록이 전한다. 조선 건국과 함께 국가의례로서 연등회는 사라졌으나 민간의 초파일 연등은 이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초파일을 등석(燈夕)이라 부르면서 며칠 전부터 등간(燈竿)을 세워 자녀 수대로 등을 달았고, 시가에 늘어선 가게마다 등간을 높이 세워 오색찬란하고 기이한 등을 팔았다. 근대에 들어서도 이러한 풍습이 이어졌고, 1920년대부터 승속이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제등 행렬이 성행하였다. 오늘날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연등회는 관불의식·이운의식으로 시작된다. 이어 각 종단과 불교 단체에서 다채로운 행렬등·장엄등을 들고 참여하는 연등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행렬을 마치면 대중과 함께 놀이마당으로 회향식을 펼친다. 전통 연등회와 현대의 축제를 결합한 연등회에 해마다 수십만 명이 운집하여 대동 축제이자 세계 축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 집필자 : 구미래

관련기사

관련자료

  • 고려의 국가 불교의례와 문화 : 연등·팔관회와 제석도량을 중심으로
    도서 안지원 지음. | 서울대학교 출판부 | 2005 상세정보
  • 연등회의 종합적 고찰
    도서 글쓴이: 홍윤식,편무영,박진태,전경욱,진철승,구미래,홍태한,한금순,정형호,윤광봉,윤아영,최윤영,서연호,이윤수,김인호,표정옥,고상현,김기정,김용덕,백창호,소방 and 연등회보존위원회 엮은이: 한국불교민속학회. | 민속원 | 2013 상세정보
  • 더보기  +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