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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법회

한글산림법회
한자山林法會
유형의례민속
키워드법회(法會)
세부장르의례, 민속(무형)
일정 기간 불교 경전을 강설하고 수행하는 모임
불교에서는 수행자들이 모여 정진하는 모습을 우거진 숲에 비유하여 총림(叢林)·산림(山林)과 같은 표현을 쓴다. ‘산림’이란 ‘최절인아산 장양공덕림(摧折人我山 長養功德林)’에서 따온 말로, 나와 남의 분별하는 마음을 뛰어넘어 자비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뜻이다. 주로 하나의 경전을 정해 놓고, 여러 명의 법사가 설법을 이어 가는 경우가 많다. 『법화경』을 강설하면 법화 산림법회, 『화엄경』을 강설하면 화엄 산림법회라 하며, 강설과 함께 수계·예참이 따르면 각각 보살계 수계 산림법회, 참회 산림법회 등이라고 한다. 3개월 동안 소의 경전을 두고 정진하는 결사 개념으로도 운행된다. 산림법회의 역사는 신라와 고려시대에 나라에서 주관하여 백 명의 고승이 연이어 강설한 백고좌법회(百高座法會)에서 찾을 수 있다. 551년(진흥왕 12)에 혜량(惠亮) 법사를 모시고 백좌강회를 처음 연 뒤, 613년(진평왕 35) 황룡사 인왕백고좌회에서 원광(圓光) 법사가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했으며, 이후 신라와 고려에서 수시로 개설되었다. 신라의 의상(義相) 대사는 태백산의 대로방(大蘆房), 소백산의 추동(錐洞)에 초가를 지어 ‘부석사 40일회’와 ‘추동 90일회’를 열고 『화엄경』 등을 강설하였다. 또한 당나라의 신라인 거주지에 있는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서 839년 겨울에 두 달간 승려 40명을 포함해 사부대중이 모여 『법화경』을 강설한 사례 등 다양한 산림법회 사례가 전한다. 조선시대의 사례로, 처능(處能)은 1670년대에 속리산·성주산·청룡산·계룡산 등지에서 산림법회를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고 전법에 전념하였다. 입적 직전인 1680년(숙종 6)에는 모악산 금산사에서 밤낮으로 5일간 대법회를 주관하여 각지에서 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18세기의 지안(志安) 또한 전국의 산사를 두루 행각하며 교화와 강설을 펼쳤고, 1725년(영조 1) 금산사에서 열린 화엄대법회에는 1,400여 명이 운집하였다. 20세기 초에는 1922년 통도사에서 한 달 반 동안 열린 화엄 산림법회를 비롯하여 팔공산 파계사, 대각교 중앙선원 등 전국에서 화엄산림이 이어졌다. 특히 ??화엄경??은 80권 39품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다른 경전 법회 기간보다 훨씬 길다. 지금도 음력 11월에 한 달간 이어 가는 통도사 화엄 산림법회를 비롯하여 전국의 사찰에서 다양한 산림법회를 개설하고 있다.
· 집필자 : 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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