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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촌

한글사하촌
한자寺下村
유형의례민속
세부장르의례, 민속(유형)
사찰의 영향권 아래, 사찰과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아랫마을
큰절을 중심으로 마을이 발달하여, 사찰과 마을은 함께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로서 특징을 지닌다. 사하촌 주민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사찰에 예속되는 측면이 강하다. 역사적으로 자신의 땅이 없는 하층민은 사찰 소유의 인근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지주·소작인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사찰 주변에 마을이 발달한 것은 사원전(寺院田)의 장원화(莊園化)가 이루어진 통일신라 무렵이다. 고려 때까지 사찰은 종교적 성격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배층, 경제적으로 대지주로서 민간의 삶에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경제가 점차 무너지고 원찰(願刹)을 제외한 대부분 사찰이 핍박받게 되면서, 사원경제를 위한 자구책이 활발해지고 사찰과 마을의 경제공동체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대처승이 허용된 일제강점기에는 사하촌이 승려들의 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 실시된 토지개혁은 사하촌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사찰의 농지를 소작농에게 분배했다가 반환케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토지 소유의 변화를 비롯해 농지·택지·산림의 임대 방식에 조정이 있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사찰의 관광 기능이 활성화되어 사하촌 또한 큰 변화를 겪었다. 1987년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본사를 포함하여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사찰 가운데 사하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은 쉰다섯 곳 이었다. 농업 중심의 전통적 사하촌에서부터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의 사하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지녀, 본격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점이었다. 사하촌은 산업화와 함께 이루어진 일반 마을의 보편적 변화와 구분되는 특징을 지녔다. 사찰이 관광지로 주목받으면서 사하촌에 상업·숙박 시설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외지 인구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지방 인구의 감소에 따라 사하촌의 전통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 집필자 : 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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