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목조불 |
|---|---|
| 한자 | 木造佛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건칠불, 소조불 |
| 세부장르 | 회화조각 |
| 시대 | 통일신라~조선 |
나무로 만든 불상
나무를 깎거나 조립하여 만든 불상으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제작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도리천에서 석 달간 안거 중인 석가모니여래를 그리워하는 우전왕(優塡王)을 위해 비수갈마천(毗首羯摩天)이 만들었다고 하는 최초의 불상이 전단나무로 만든 목조불이었다.
7세기 일본의 목조불상이 지니는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목조불이 다수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쉽게 부식하는 재질의 특성상 현전하는 고대 목조불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은 통일신라시대 883년(헌강왕 9)에 조성된 〈합천 해인사 법보전·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두 구로, 향나무로 만든 본체에 여러 나무를 붙인 다음 조각하는 접목조(接木造)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고려시대부터는 목조불의 조성이 크게 늘어나면서 나무가 우리나라 불상의 주요 재료로 자리잡게 된다. 제작 연대가 밝혀진 상으로는 1199년에 조성된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274년 이전에 제작된 〈서울 개운사 목조여래좌상〉, 1280년 이전의 〈서산 개심사 목조여래좌상〉 등이 알려졌다. 향나무·잣나무·소나무·전나무 등 재래종이 재료로 사용된 사실이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고, 기록상으로는 개성 연복사에 수입품인 전단목제 불상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목조불의 비중이 더욱 높아진다. 1458년의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466년의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등 조선 전기에는 왕실에서 발원한 상이 나무로 조성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전란을 입은 사찰들이 대대적으로 불사를 벌이면서 다수의 불상을 새로 봉안하게 되는 조선 후기는 가장 많은 목조불상이 조성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의 목조불은 1636년과 1703년에 각각 조성된 구례 화엄사의 〈대웅전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과 〈각황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과 같은 3미터 전후의 대형 목조불부터 각 사찰의 명부전에 봉안된 시왕과 종관, 동자 등의 명부권속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재료로는 적송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은행나무·오리나무·잣나무·피나무 등도 함께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목조불은 하나의 큰 통나무를 불상으로 조각하는 통목조와 여러 목재를 이어 만드는 접목조가 모두 현전한다. 접목조의 경우 접착을 위해 짐승 가죽으로 만든 아교라거나 철심, 못 등이 이용되었다. 표면 처리는 호분·흙·삼베·옻칠 등을 사용하는데, 재료의 비중에 따라 소조불이나 건칠불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다.
· 집필자 : 이용윤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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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어디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을까? 행여 비수갈마천이나 혹 그의 제자가 온 것은 아닐까?’ 왕은 그때 몸에 걸쳤던 영락(瓔珞)을 자기 손으로 받들고 와서 그의 목에다 걸어주고, 이어 다시 무량한 갖가지 보물을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왕은 곧 창고를 주관하는 대신과 함께 궁내의 창고 안에서 향나무를 선택하여 몸소 어깨에 메어다가 천장(天匠)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훌륭한 그대여, 이 나무를 사용하여 나에게 불상을 조성하여 주되, 여래의 형상과 똑같게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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