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독성도 |
|---|---|
| 한자 | 獨聖圖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나한도, 나한상, 아라한, 나반존자, 나한재, 독성재, 칠성도, 산신도, 삼성각, 독성각, 천태각 |
| 세부장르 | 회화조각 |
| 시대 | 조선 후기~근대 |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인 나반존자를 그린 불교회화
천태산에 머물며 혼자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나반존자(那畔尊者)를 그린 불화이다. 깊은 산중을 배경으로 홀로 앉아 있는 나이 든 승려의 모습을 그렸다. 독성도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 그린 작품이 전하지 않고, 화면 구성이 조선 후기 십육나한도와 유사하여 16나한 중 제1존자인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囉惰闍)를 그린 것이란 설이 있다. 반면에 빈도라발라타사존자를 나반존자라 칭한 근거자료가 없고, 조선 후기 불교의식집에서 천태산 나반존자를 독성이라 지칭하였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나한신앙의 성행 속에 파생한 별도의 신앙 대상을 그린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 후기 독성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 가장 이른 예는 1634년에 간행한 『영산대회작법절차(靈山大會作法節次)』이다. 영산재의 절차를 기록한 이 의식집의 「독성의문(獨聖儀文)」 항목에 독성의 성격과 형상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독성은 석가여래의 입멸 후 미륵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홀로 선정(禪定)에 들어 있는 존재로, 만약 독성에게 공양을 올리면 신통력을 발휘해 재앙을 소멸시켜 주고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한다. 이 내용은 조선 후기 대표 의식문인 『제반문(諸般文)』(1691)과 『작법귀감(作法龜鑑)』(1826)에도 그대로 인용되었다. 독성의 형상에 대해서는 희고 긴 눈썹이 눈을 덮고 옷은 어깨가 반쯤 드러나게 걸친 채로 천태산에 홀로 앉아서 수행한다고 하였다.
독성도는 조선 후기 의식집의 기록과 같이 나무나 바위가 있는 산속을 배경으로 길고 흰 눈썹을 가진 나이 든 승려가 석장을 짚고 홀로 앉아 있거나 시중을 드는 동자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존하는 독성도 중 제작 연대가 가장 이른 작품은 봉화 〈각화사 독성도〉(1795)이며 다음으로 〈은해사 서운암 독성도〉(1817)가 전하는데 두 작품은 화면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조선 후기 독성도의 전형적인 모습은 대전 〈비례사 독성도〉(1878)와 경북 문경 〈김룡사 독성도〉(1880)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진 흰 눈썹이 특징적인 노승이 넓은 암반 위에 앉은 모습을 간략하게 그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그린 독성도는 시중을 드는 동자나 소품이 추가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는 동시기 나한도의 변화 양상과 동일하다.
화면 크기 1미터 이하의 작은 규모로 제작하는 독성도는 19세기에는 주로 대웅전, 영산전, 보광전 등 사찰의 중심 전각에 봉안하거나 규모가 작은 암자에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봉은본말사지』에 따르면, 1693년 삼각산 경국사에 천태각을 건립하였는데 상량문에 독성인 나반존자에 대한 언급이 있어 독성을 모신 단독 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19세기 말 독성각이 건립된 사례도 있어 독립된 전각에 주불화로 봉안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독성도는 대웅전, 극락전과 같은 주불전의 측벽이나 나한전 혹은 칠성각 등에 칠성도 및 산신도와 함께 걸렸다. 특히 칠성과 산신, 독성을 함께 모신 삼성각에는 칠성도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독성도와 산신도가 나란히 봉안되는 정형을 이루기도 한다.
· 집필자 : 이용윤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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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을 청하는 의식(獨聖請) 우러러 생각하건대, 독성(獨聖)께서는 …<중략>… 저녁 노을빛 가사 반쪽 어깨에 걸치신 채 도를 즐기고, 백설 같은 흰 눈썹이 눈을 덮은 채 허공을 관하시며, 현재에 선나(禪那)에 머물러 계시면서 무량한 공양을 받을 만하신 분이옵니다. …<중략>… 영산회상(靈山會上) 당시에 부처님으로부터 부촉(付囑)을 받고 멸도(滅度)에 들지 않고 항상 천태산에 머물면서 천상과 인간에 복밭이 되어 주시고 용화(龍華) 세계를 기다리시는 나반존자와 세상에 머물러 있는 응진(應眞) 대아라한(大阿羅漢)과 아울러 따르는 모든 권속님들을 청하오니, 오직 바라옵건대 자비로써…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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