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금동불 |
|---|---|
| 한자 | 金銅佛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32상, 32길상, 80종호 |
| 세부장르 | 회화조각 |
| 시대 | 삼국시대~조선 |
표면을 도금한 동제 불상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 상의 표면에 금도금을 하여 완성한 불상이다. 불상의 금빛 장엄은 『대지도론(大智度論)』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수록되어 있는 부처의 32길상(吉相) 중 ‘전신이 미묘한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뜻의 금색상(金色相)에 의거한다. 여러 가지 금속을 합금하여 틀을 만들고 표면을 다듬는 등 복잡한 공정이 요구되지만, 내구성이 뛰어나고 금색이 가장 오래 유지되는 기법인 만큼 이른 시기부터 다수의 금동불이 제작되었다.
금동불의 제작을 위해서는 먼저 점토로 안틀을 만든 다음 표면에 송진을 섞은 밀랍을 씌워 세부적인 조각을 하고, 다시 점토로 바깥틀을 만들어 열을 가해 밀랍을 녹이는데, 이를 실납법(失蠟法)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생긴 바깥틀과 안틀 사이의 공간에 녹인 동을 붓고 틀을 제거한 후, 금도금을 하고 표면을 다듬어 완성한다. 바깥틀만 제거하여 내부에 점토가 차 있는 상태를 통주식(通鑄式) 실납법, 안틀까지 제거하여 속이 비어 있는 것을 중공식(中空式) 실납법이라 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5세기경부터 통주식 실납법으로 불상이 제작되었으며, 6세기부터는 점차 중공식 실납법이 적용된 금동불이 늘어난다.
574년 조성되었다고 전해지는 황룡사 장육석가삼존불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6세기 후반에는 대형 금동불을 조성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동반가사유상〉 2구는 모두 머리끝에서 대좌까지 중공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주물의 입자가 고르고 조형성도 뛰어나 이 시기의 뛰어난 제작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8세기 후반에 이르면 〈백률사 금동약사불입상〉이나 〈불국사 금동아미타불좌상·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이 안정적으로 대형 금동불을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이나 〈후묘지(普明寺) 금동보살좌상〉 등 고려 후기에 다수의 금동불이 전하며, 조선시대 초기에도 〈영천 은해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등의 사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전각에 봉안하는 불상의 재질이 목조불로 자리잡은 조선 후기에는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금동불상군〉 등 몇몇 소금동불만이 제작되어 전한다.
· 집필자 : 이용윤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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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무엇이 금빛인가? 【답】 무쇠가 금 옆에 있으면 돋보이지 못한다. 지금 현재의 금도 부처님 계실 때의 금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부처님 계실 때의 금을 염부나금(閻浮那金)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염부나금을 큰 바다 안의 전륜성왕이 다니는 길의 금모래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금모래를 금산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금산을 수미산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수미산을 삼십삼천의 영락(瓔珞)의 금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삼십삼천의 영락의 금을 염마천(焰摩天)의 금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염마천의 금을 도솔타천(兜率陀天)의 금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도솔타천의 금을 화자재천(化自在天)의 금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화자재천의 금을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금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고, 타화자재천의 금을 보살의 몸빛에다 견주면 돋보이지 않나니, 이러한 빛을 금빛 모습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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