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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불도

한글괘불도
한자掛佛圖
유형문화예술
키워드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 불교의식, 영산재, 천도재, 영산회상도, 삼신불도, 삼세불도, 오종범음집, 염화시중, 선종
세부장르회화조각
시대조선 중기 이후
야외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높이 내거는 대형 불교회화
사찰의 전각 내부가 아닌 야외에서 법회나 의식을 개최할 때 걸기 위해 제작한 대형 불화이다. ‘부처를 걸다’, ‘걸어 놓은 부처’라는 뜻의 괘불(掛佛)이라는 명칭은 그림 하단에 그림을 제작한 내역을 적어 놓은 화기(畵記)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괘불도는 ‘괘불’, 거는 그림이라는 뜻의 ‘탱(幀)’ 자를 붙여 ‘괘불탱’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괘불도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간행한 불교의식집에서 괘불도를 옮긴다는 의미의 ‘괘불이운(‘掛佛移運)’ 항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이전부터 괘불도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괘불도는 의식용 불화이기 때문에 제작 당시 불교의식의 종류와 의식집의 내용을 반영하여 다양한 주제가 그려졌다.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석가여래와 석가여래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했던 모임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이다. 〈죽림사 세존괘불탱〉(1622)이나 〈화엄사 괘불도〉(1653)와 같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한 괘불도부터 18세기 괘불도에 많이 등장한다. 영산회상도는 조선 후기에 법당의 불단에 걸었던 불화인데 야외 법회를 열 때 대웅전에 모셨던 불상이나 불화를 밖으로 꺼내어 재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 괘불도에 석가여래나 영산회상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18세기에는 여러 종류의 불교의식이 영산재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어 영산회상의 석가여래 관련한 주제가 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법신 비로자나여래·보신 노사나여래를 나란히 그린 삼신불도, 사바세계의 석가여래와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와 동방 유리광정토의 약사여래를 그린 삼세불도, 삼신불과 삼세불을 함께 그린 오불회도 등과 같이 여러 부처를 한 화면에 그린 다불회도 형식의 괘불도도 꾸준히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성 〈칠장사 오불회괘불탱〉(1628), 공주 〈갑사 삼신불괘불도〉(1650), 영주 〈부석사 오불회 괘불도〉(1745) 등이 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삼신불을 주제로 한 괘불도 조성이 유행했는데, 이는 이 시기 불교의식에 삼신불이 봉청되는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부안 〈내소사 영산회 괘불도〉(1700)와 같이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의 석가삼존 구성에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 백의관음과 대세지보살을 그린 도상은 18세기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유행하였는데, 이 형식은 17세기 후반에 간행된 불교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1661)에 실린 불보살을 도상화한 것이다. 17세기 괘불도 중에는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몸에는 장신구를 걸친 모습의 보살형 여래를 그린 사례가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한다. 단독상을 그린 경우와 성중(聖衆)을 함께 그린 경우가 있으며 손은 설법인을 취하거나 꽃을 들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부여 〈무량사 괘불도〉(1627), 공주 〈신원사 괘불도〉(1664), 산청 〈율곡사 괘불탱〉(1684), 영천 〈수도사 괘불도〉(1704), 보은 〈법주사 괘불도〉(1766), 양산 〈통도사 괘불도〉(1767), 김천 〈직지사 괘불도〉(1803) 등이 있다. 이 형식의 괘불도는 화기(畫記)에 ‘미륵(彌勒)’, ‘노사나(盧舍那)’, ‘영산회(靈山會)’, ‘세존(世尊)’ 등이 쓰여 있는데, 이는 법화신앙의 석가모니 영산회에서 석가·노사나·비로자나여래가 모두 석가모니불로 귀결되는 것을 나타내어 화엄신앙의 불신관(佛身觀)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꽃을 든 여래를 그린 괘불도로 경북 성주 〈선석사 괘불도〉(1702), 경북 예천 〈용문사 괘불도〉(1709), 상주 〈남장사 괘불도〉(1788) 등이 있다. 손에 꽃을 든 모습은 영축산에서 석가여래가 연꽃을 대중에게 보이자 가섭만이 그 의미를 알고 미소 지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선종의 염화시중(拈花示衆)을 상징하므로, 법화신앙과 화엄신앙에 선종의 선 사상을 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형식은 17세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되다 18세기에는 주변 경계 지역에 퍼져 경남 권역으로까지 제작 사례가 확산된 양상을 보인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죽어서 극락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법회가 성행하면서 아미타정토신앙의 유행에 힘입어 아미타괘불도의 제작이 많아졌다. 아미타괘불도는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서울·경기 지역 사찰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이 시기 아미타괘불도는 아미타여래와 관음·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 구성에 석가여래의 협시보살인 문수·보현보살과 석가여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을 더하여 한 화면에 영산회상과 아미타정토를 합한 형식을 제작하기도 하고, 또 19세기 불교의식집에서 관음보살의 역할이 두드러진 경향을 반영한 듯 백의관음보살의 모습을 화면 하단에 크게 그리기도 한다. 이처럼 괘불도는 신행과 의식의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을 보인다.
· 집필자 : 이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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