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건칠불 |
|---|---|
| 한자 | 乾漆佛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목조불 |
| 세부장르 | 회화조각 |
| 시대 | 고려 후기~조선 전기 |
옻을 바른 천을 겹쳐 만든 불상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바른 삼베 등의 천을 여러 겹 붙여 만든 불상으로,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고 다른 재료에 비해 월등하게 가볍게 제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협저상(夾紵像)이라고 불렸다. 옻칠은 내구성이 강하고 견고하여 중국 한대부터 관이나 일상 기물 등에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초기 철기시기 고분 및 경주 월지 등에서 옻칠 공예품이 출토되었다.
옻을 이용한 불상 제작은 4세기경의 중국 기록이 확인되나, 현전하는 사례는 수 나라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과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등 이른 시기의 건칠불이 보이며,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를 중심으로 약 20여 구가 전한다.
우리나라 건칠불의 제작 과정과 재료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해외의 사례와 몇몇 불상의 과학적 조사를 통해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우선 점토와 나무 등으로 불상의 원형을 만든 뒤, 동물의 뼈를 태운 골회(骨灰)나 광물질 등을 섞은 옻칠을 천에 발라 여러 차례 겹쳐 형태를 만든다. 외형이 완성되면 내형토를 빼내는데, 후기의 불상은 밑면을 통해 대부분 흙을 제거한 후, 윗부분의 흙은 머리 뒷면을 절개하여 파낸 흔적이 보이는 사례가 많다. 한편, 제작 시기가 앞서는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의 경우 불상의 측면을 전체적으로 절개하여 내형토를 모두 제거하고 건칠로 만든 앞, 뒤판을 다시 실로 꿰매어 완성하였고,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앞판은 건칠, 뒤판은 나무로 앞과 뒤를 붙여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칠불의 제작은 〈나주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남원 실상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 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불상에 집중적으로 관찰되며, 16세기 이후에는 그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며 제작 과정에서 온도와 습도의 섬세한 조절이 필요하고, 내구성이 약하며, 무엇보다 옻칠이 구하기 힘들고 매우 고가의 재료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 집필자 : 이용윤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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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 서남쪽으로 10여 리를 가면 지가파박나(地迦婆縛那)가람이 있는데 그 속에는 협저(夾紵) 입불상(立佛像)이 모셔져 있다. 본래 굴지국(屈支國)으로부터 이곳으로 와서 머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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