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동교 개운사 |
|---|---|
| 한자 | 東郊 開運寺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서교 봉원사, 백련사, 동교 영도사, 홍천사, 불암사, 화개사 |
서울 동교범패 전승 중심 사찰
서울 동교범패를 전승하는 중심 사찰로서, 1396년(태조 5) 무학대사가 동대문 밖 5리 안암산 기슭에 창건한 영도사(永導寺)를 그 시원으로 삼는다. 1779년(정조 3) 5월 후궁 원빈(元嬪)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영도사를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여 개운사라 개명하고, 원빈의 영가를 봉안하여 극락왕생을 빌었다. 신촌 봉원사와 마찬가지로 개운사 주변에는 승려의 가택들이 사하(寺下)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가 사찰정화운동 이후 대처승들이 퇴출되면서 사하마을의 역할이 사라졌으나 그 이전에는 봉국사, 홍천사(신흥사), 불암사를 주축으로 하는 동교 범패의 중심 사찰이었다.
해방 전후 개운사에는 염불 최고 전우운 스님과 교학 제일 박한영 스님이 쌍두마차로 후학을 양성하였다. 청담 스님이 개운사에서 박한영 스님께 경학을 배운 적이 있고, 어산학교가 있던 대원암은 탄허 스님이 머물면서 역경사업을 펼쳤던 곳이다. 사찰정화운동의 선봉이었던 청담 스님이 주석하였으므로 대처와 비구 승려들의 분규가 격렬하여 안암동 발령을 꺼려 할 정도였다. 마침내 대부분 대처승이었던 범패승들이 개운사에서 퇴출되면서 의례전승도 단절되었다.
이전에는 전우운 스님,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범패 보유자로 지정되었던 운공 스님이 개운사를 근거지로 활동하였고, 봉원사 마일운 스님, 청량사 동희 스님, 전주 일응 스님이 이곳에서 두루 배웠으나 정화분규 이후에는 의식과 범패를 배우기 위해서 봉원사 옥천범음대학으로 가야만 했다. 1981년 중앙승가대학이 개운사에서 문을 열며 염불과 범패 강습은 대원암에서 이루어졌고, 2023년 현재는 개운사 내의 강당에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개운사에 적을 두고 있던 일응 스님이 염불과 범패를 가르쳤고, 어산작법학교로 독립한 후 인묵 스님이 초대 학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법안 스님이 제2대 학장을 맡고, 예하의 승려들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개운사는 조계종의례위원회에서 추진하는 한글의례운동의 주역이며,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의 범패 강의도 어산작법학교 승단이 맡고 있다.
· 집필자 : 윤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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