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입당구법순례행기 |
|---|---|
| 한자 | 入唐求法巡禮行記 |
| 유형 | 문화예술 |
| 시대 | 통일신라 후기 |
| 연도 | 838년 6월~847년 9월 |
| 관련장소 | 중국 산동 적산원, 일본 엔라쿠지(延曆寺), 하동 쌍계사 |
| 관련인물 | 엔닌(圓仁), 장보고 |
일본 승려 엔닌이 자신의 입당구법행을 기록한 서책
794년 도치기현(栃木縣) 도가군(都賀郡)에서 태어난 엔닌은 9세 되던 802년에 출가하여 15세인 808년부터 천태종 종조 사이쵸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816년에 도다이지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30대 초반인 828년에 호류지, 시텐노지 등지에서 법화경과 인왕경을 강술하다 835년 청익승으로 선발되었을 때는 이미 법랍 34년 이상이었다. 이 무렵까지 그의 불교의례와 범음성의 기반은 한반도와 막역한 사이였던 나라(奈良)불교였다.
이듬해인 836년 견당선에 승선하였으나 역풍으로 실패하고, 838년 7월 2일당(唐)에 도착하여 839년 6월부터 적산법화원에 유숙하였고, 842년에 회창폐불(會昌廢佛, 당나라 무종이 행한 폐불 정책)이 시작되어 강제 환속해야만 했다. 845년 5월 귀국하기 위하여 여정을 옮겼으나 이 또한 실패를 거듭하다 847년 9월 17일에 하카타(博多)의 노고도(能擧嶋)에 정박하였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승화 5년(838, 당 개성 3) 6월 13일부터 시작하여 귀국한 이후 12월 14일 난주(南忠)에서 사리가 온 일, 메이도쿠(明德) 2년(1391) 10월 본 기록을 필사하여 완성되기까지 몇 페이지가 더 이어진다. 전체 4권으로 이루어진 본 행기의 제1권은 836년 5월~839년 4월 18일까지 항해를 위해 보낸 약 3년간의 기록이다.
제2권은 839년 4월 19일~840년 5월 16일까지 산동 적산원에 머물며 기록한 내용으로, 강경・일일강・송경의식과 범패를 비롯하여 적산원의 살림 규모, 신라인들의 생활 방식, 자신의 구법 순행에 신라인들이 도와준 여러 내용을 기록하였다. 신라인들이 도와준 내용 가운데는 당나라 입국에 필요한 허가증 발급, 선박과 행로 안내 등 제반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제3권은 840년 4월 28일~843년 5월 26일까지 약 3년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오대산 순례, 죽림사 재례불식(齋禮佛式), 천태종 고승강론(2달 소요), 장안 자성사 등지에서 밀교수법 전수, 842년 10월 회창폐불의 내용이 담겨 있고, 제4권은 843년 6월 3일~847년 12월 14일에 이르는 동안 장안 → 양주 → 초주 → 등주를 왕복한 끝에 재당 신라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귀국함을 기록하였다.
귀국 이후 848년 3월에는 제자들과 함께 입경하여 나라의 각료들을 만나 환대를 받았고, 6월에는 전등대법사에 봉해졌으며, 7월에는 내공봉십선사(內供奉十禪師), 854년 4월에는 천태좌주에 보임, 864년 정월 14일 입적, 866년 7월에 자각대사 시호를 받았다. 이후 천태종은 제반의 법맥이 자각대사를 주축으로 형성되었고, 오늘날 전승되는 일본의 의례 율조 쇼묘(聲明)의 시조로 칭송받고 있다.
엔닌의 일대기는 한국의 진감 선사와 비교될 사안이 많다. 진감 선사는 804년에 입당하여 26년간 수학한 뒤 830년에 귀국하였다. 이 기간은 회창폐불과 같은 장애도 없었고, 엔닌과 같이 항해를 하며 근 6년을 허비하는 일도 없었다. 악보와 녹음기가 없던 시절 무박절의 범패를 익히기 위해서는 한 곳에 정주하여 선율을 외울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엔닌의 당나라 범패 수학은 산동 적산원에 1년간 유숙한 것이 전부여서 범패 선율을 외우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엔닌의 쇼묘는 일본과 당나라 두 나라의 관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많다.
그러나 후대의 평가는 엔닌의 업적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그 결정적인 요인이 엔닌이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있다. 엔닌은 배워온 쇼묘 악곡 중에, 다섯 가지 대곡(五箇大曲: 長音供養文・獨行懺法曲・梵網戒品・引聲念佛・長音九条錫杖)을 제자들에게 각각 나누어 가르쳤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그의 제자 안넨(安然)은 『싯탄조(悉曇藏)』를 저술하여 범문학뿐 아니라 쇼묘 악곡의 선법 이론을 정립하였고, 그 이론이 궁중음악을 비롯한 일본음악 이론의 바탕이 되었다. 이와 달리 진감 선사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의례와 범패는 조선조 억불을 지나며 제반의 법도가 허물어진 데 비해 엔닌의 후학들은 지속적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궁중음악과 함께 엄격한 법도와 다채로운 전승 법맥이 유지되면서 수많은 쇼묘 문헌과 악리(樂理)를 남기고 있다.
· 집필자 : 윤소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