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당풍 범패 |
|---|---|
| 한자 | 唐風梵唄 |
| 유형 | 문화예술 |
| 시대 | 삼국시대~현대 |
| 연도 | 830년(흥덕왕 5)~현재 |
| 관련장소 | 쌍계사 및 전국 무형문화재 전승 사찰 |
| 관련인물 | 진감국사 |
당나라에서 들어와 현재까지 전승되는 한어(漢語) 범패
최치원(857~?)에 의해 쓰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문에는 혜소 진감(慧昭眞鑑, 774~850)이 통일신라 애장왕 5년(804)에 당(唐)에 가서 창주(滄州)의 신감 선사(神鑑禪師)에게 득도한 후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였다고 적고 있다. 진감 선사의 26년 수학은 일본 쇼묘의 개창자 엔닌(圓仁)이 8년간의 수학 기간 중 항해의 시도와 번복으로 5년여 기간을 보내고 입당해서는 회창폐불로 원활히 수학할 수 없었던 것에 비해 범패를 익히기에 월등한 조건이었다.
악보도 없고, 녹음기도 없던 시절 박자가 없이 모음을 늘여 짓는 범패 선율을 숙지하고 익히기에 충분했던 여건과 기간이었던 만큼 진감 선사의 범패가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진감 선사는 귀국한 직후 상주 남장사에 일시 주석하다 지리산 옥천사에 자리를 잡아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옥천사는 사찰 양편에 계곡이 있어 쌍계사로 개명하였고, 이곳에서 범패를 가르치자 신라 전역에 당풍범패가 퍼져 나갔다.
진감 선사가 수학하던 시기의 중국 범패는 전독(典讀)・패찬(唄讚)・염불・백문류 범패가 있었고, 시체(詩體)는 4언・5언・7언 절구의 정형시였다. 이후 중국은 장단구(長短句) 사(詞)를 가사로 하는 찬류(讚類) 범패가 생겨났고, 한국은 고려시대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티베트범패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조에는 민간 주도 의례로 범패의 토속화가 심화되어 오늘날 중국과 한국 범패는 많은 차이가 있다.
통일신라 당풍범패의 원형을 좀 더 많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영제범패는 경제 짓소리와 같이 탁하고 격한 표출력을 지닌 범패는 없다. 반면 경제범패는 장중한 짓소리 성음이 있기는 하나 한문 가사의 모음을 길게 늘여 짓는 당풍범패 고유의 특징은 그대로 살아 있다. 이들 중 다수의 동일 가사가 오늘날 중국에서는 게(偈), 일본에서는 한찬(漢讚)으로 창화되고 있으므로, 당풍범패는 한・중・일 어산범패의 공통된 뿌리라 할 수 있다.
· 집필자 : 윤소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