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설공찬전 |
|---|---|
| 한자 | 薛公瓚傳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채수 |
| 시대 | 조선 전기 |
| 연도 | 16세기 초 |
| 관련인물 | 채수 |
조선 전기의 문인 채수가 지은 소설
조선 전기의 문인 채수(蔡壽, 1449~1515)가 지은 소설이다. 『중종실록(中宗實錄)』 6년(1511) 9월 2일부터 보이는 관련 기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불교의 윤회화복설(輪廻禍福說)을 담고 있어 백성을 미혹되게 한다는 이유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이 작품의 수거를 허락해 줄 것과, 숨기고 있다가 발각되는 경우 처벌케 해 달라고 요청하여, 마침내 왕명으로 모조리 수거돼 불태워졌다고 한다. 그 후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제목과 결말 일부가 소개되어 전하였고, 1997년에 한글로 필사된 작품 일부가 발견되어 구체적인 줄거리 파악이 가능해졌다.
작품은 순창에 사는 설공찬이 죽어 저승에 갔다가 그 혼이 돌아와 남의 몸을 빌려 수개월간 이승에 머물면서, 자신의 원한과 저승 일을 전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당시 금서로 탄압받았던 이유는 첫째, 불교의 윤회화복설이 주인공의 말을 통해 매우 사실적으로 전달되어 독자를 감화시키는 힘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유교를 통치 철학으로 내세운 당시 지배층이 용납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둘째, 소설의 작가가 중종반정(中宗反正)의 공신으로 『세조실록』,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한성부좌윤과 호조참판을 지낸 당대의 고위 관료였다는 점이다. 작가의 지명도가 높기 때문에 소설의 영향력 또한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내용 중에 ‘여자도 글을 잘하면 남자와 꼭 같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다’라고 하였고, ‘신하로서 반역을 일으켜 왕이 된 당나라의 주전충(朱全忠) 같은 이는 모두 지옥에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시국에 비추어 보아 매우 정치적인 발언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전하는 국문 필사본은 비록 한문을 번역한 국문 소설이지만, 한국 소설사에서 한글로 읽힌 최초의 소설로 평가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이어 우리나라 지명과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의의, 이 소설과 관련된 논쟁을 통해 16세기에 소설이 가지는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의의, 『월인석보』 소재 불전(佛典)계 소설과 함께 불교적 사유에 기반한 조선 전기의 불교 서사물이라는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 집필자 : 김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