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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

한글월인석보
한자月印釋譜
유형문화예술
키워드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시대조선 전기
연도1447년
관련인물세종, 세조, 소헌왕후
세조가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편한 책
조선 초 세조가 운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산문 『석보상절』의 해당 부분을 해설 부분으로 삼아 합편한 책이다. 『석보상절』은 1447년(세종 29)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세종의 명으로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편찬한 석가의 일대기다. 세종은 1447~1448년경에 『석보상절』을 대본으로 하여 악장체 국문시 「월인천강지곡」을 지었다. 세조는 1459년(세조 5)에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조목조목 나누고 합편 증수하여 목판본 『월인석보(月印釋譜)』를 펴냈다. 전체 분량은 25권인데, 현재 권3, 권5, 권6, 권16, 권24를 제외한 20권이 전한다. 본문의 구성은 「월인천강지곡」의 각 장에 따라 『석보상절』의 내용을 결합한 ‘운문+산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월인석보』는 두 책의 내용을 기본으로 엮은 것이지만 두 책과 비교하면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운문의 경우 『월인석보』에는 「월인천강지곡」 가사에 주석이 첨가되었고, 한자와 한자음의 위치 및 표기가 달라졌으며, 14장과 83장의 경우 가사 일부가 수정되었다. 그리고 산문의 경우 『월인석보』는 『석보상절』에 비해 직역체 번역의 경향을 띠며, 표기에서 고유어보다 한자어의 비중이 더 크다. 불경 내용을 초록한 『석보상절』에 비해 경전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경향도 있다. 산문의 협주에 많은 경전과 불서가 추가된 것도 다른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월인석보』가 단순히 왕후의 추선(追善)을 위해 편찬한 것이 아니라, 승려를 포함하여 한자를 읽을 수 있는 독자에게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 교리를 알리고자 하는 교육적 의도를 지니는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월인석보』는 한글이 창제된 직후 중세국어의 실상을 살필 수 있다는 점과 조선 초기의 불교학 수준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관련자료

  •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구성방식 비교연구
    학술논문 김기종 | 한국어문학연구 | 41 | 서울: 한국어문학연구학회. | 2003 상세정보
  • 월인석보의 편찬
    학술논문 김영배 | 불교학논총(월운스님 고희기념논총) | 서울: 동국역경원. | 1998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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