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해인사 설화

한글해인사 설화
한자海印寺 說話
유형문화예술
키워드이거인, 해인사, 사간장경판
관련장소해인사
관련인물이거인(李居仁)
해인사의 창건과 해인사 장경 연기를 다룬 설화
해인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최치원이 지은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에 등장한다. 순응(順應)이 신림(神琳)에게 사사하고 귀국해 802년(애장왕 3)에 해인사를 창건하고, 이정(利貞)이 그를 계승해 공을 세웠다.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943)에는 순응과 이정이 보지공(寶誌公)의 『답산기(踏山記)』를 가지고 돌아와 창건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해인사 창건 유래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개간한 설화가 흥미롭게 더해졌다. 만력(萬曆) 26년(1598) 4월 15일 쓰고, 강희(康熙) 원년 임인년(1662) 2월에 개판한 『해인사고적(海印寺古籍)』에 있는 「해인사유진팔만대장경개간인유(海印寺留鎭八萬大藏經開刊因由)」에 팔만대장경의 개간 유래가 전한다. 합천에 사는 이거인(李居仁)은 고을의 향리로서 가난했으나 성품이 온순하고 공무를 성실히 하여 동네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날 그가 납세를 독려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눈이 셋 달린 개[三目狗]’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고는 딱하게 여겨 집으로 데려와 보살폈다. 삼목구(三目狗)는 이거인과 함께 3년을 지낸 뒤에 죽었다. 이거인은 마치 자식이 죽은 듯 삼목구를 관에 넣고 음식을 차려 장례를 치러 주었다. 개가 죽은 지 2년이 지나 이거인도 죽어 명부(冥府)로 가게 되었다. 이거인은 그곳의 왕으로 있던 삼목구와 만나 옛정을 나누었다. 삼목왕은 재생의 방도를 묻는 이거인에게 염라대왕을 만났을 때 해야 할 말을 일러 주었다. 이거인은 경판을 조성하는 불사를 소원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명부에 왔노라고 했다. 염라대왕이 가상히 여겨 이거인에게 불사를 완수하고 오라며 현세로 돌려보내 주었다. 이거인이 명부를 나오는데 삼목왕이 그에게 권선문을 써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찾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신라 왕실의 공주 자매가 병을 얻어 눕게 된 후 부왕에게 대장경 화주(化主)인 이거인을 불러 달라고 간청했다. 공주는 이거인을 궁궐로 불러서 자신이 삼목구임을 밝히고 부왕에게 대장경을 새기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거인은 대장경 판각 책임을 맡아서 대장경을 새긴 후 해인사에 봉안하고 경찬회를 베풀었다. 대장경을 봉안하니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졌으며, 이거인 부부는 해로한 후 극락왕생했다. 이 설화는 해인사 장경의 간행 불사가 이루어지면서 고려 초(1089~1098)에 정착된 것으로 추정되며, 뛰어난 문체적 기법과 명부 모티프의 활용, 윤회와 정토 사상 등을 담아내고 있어 불교전기소설(佛敎傳奇小說)로 여겨지기도 한다.
· 집필자 : 오대혁

관련자료

  • 해인사유진팔만대장경개간인유의 출현 시점과 소설사적 위상 검토
    학술논문 김승호 | 한국문학논총 | 42 | 한국문학회 | 2006 상세정보
  • 가야불교에서 가야산이 지니는 의미에 관한 고찰
    학술논문 정명진 | 동아시아불교문화 | 54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2022 상세정보
  •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