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영규대사 설화 |
|---|---|
| 한자 | 靈圭大師 說話 |
| 유형 | 문화예술 |
| 키워드 | 영규, 기허당, 승병, 임진왜란 |
| 시대 | 조선 |
영규대사의 탄생과 성장, 승병장으로서의 활동 등을 이야기한 전설
임진왜란 때의 3대 승장에 속하는 영규대사는 설화 속에서 왜적을 물리치다가 순사한 것으로 그려진다. 주로 공주·논산, 금산, 청주·옥천 지역을 중심으로 구비전승되는 이 설화는 탄생담과 성장담, 승병장으로서의 활동담, 최후담, 후일담 등으로 나타난다.
영규대사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아이일 때 대호(大虎)와 싸워 이길 정도였고, 국운을 꿰뚫어 볼 정도로 출중한 인물이다. 그런데 부모는 멸문을 피하기 위해 영규대사를 출가시킨다. 아기장수 설화와 같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출가를 시키는 것으로 변형된다. 그리고 영규대사는 절에 들어가 불목한, 공양주, 머슴, 바보와 같은 모습으로 주어진 일을 꿋꿋이 해 나간다. 그리고 그는 갑사의 장군수를 먹고, 정신적 수양을 하며,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무기를 모으며, 무술을 연마한다. 이처럼 설화는 잠재된 능력을 숨기면서 미래의 국난을 대비하는 것으로 그의 성장기를 그린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는 수백 명의 승려들을 휘하에 거느린 승장이 된다. 갑사를 중심으로 승군을 조직하고 전장으로 나아가려 할 때 철당간 위로 몸을 날려 꼭대기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니 스님들이 휘하에 들어가기를 다툰다. 관군이 허물어졌을 때 그는 물러서지 않고 홀로 적과 싸운다. 의협심을 앞세워 성급하게 왜군을 뒤쫓던 조헌의 부대가 영규대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모두 전사한다. 그의 뛰어난 예지력은 승려라는 신분으로 인해 무시되고 만다.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왜병들을 대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영규대사는 끝까지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다. 설화에서 그는 갈등하던 조헌 또는 왜구에게 창칼로 찔려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규대사가 죽은 이후의 후일담으로 수령 방백들이 그의 비각 앞을 통과할 때 내려서 걸어가지 않으면 말발굽이 땅에 붙었다는 설화도 전한다. 6.25 때 폭격을 받고도 비각만이 타지 않았다고도 한다.
이처럼 설화 속에서 영규대사는 승병장이자 민중 영웅으로 그려졌다. 그는 아기장수와 같은 비극적 운명을 타고났지만 승려가 되는 것으로 이를 극복하고, 임진왜란 때 뛰어난 승병장으로 승군을 이끌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승려라는 신분적 한계로 인해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후일담은 그가 민중의 영웅으로 영원히 살아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다.
· 집필자 : 오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