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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설화

한글미륵사 설화
한자彌勒寺 說話
유형문화예술
키워드미륵사, 서동, 서동요, 무왕
시대백제
백제 미륵사의 창건 연기를 담은 전설
미륵사 설화는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 창건 연기를 다루고 있는 전설로, 『삼국유사』 무왕조에 실려 전한다. 서동설화로도 많이 알려진 이 설화는 무왕의 출신과 어려서의 생활, 선화공주와의 혼인 과정과 즉위, 미륵사 창건 배경과 과정 등 세 부분으로 엮이었다. 그런데 이 설화는 서동과 백제 무왕이 동일 인물인지, 미륵사의 창건주는 누구인지 등 논란이 계속되었다. (1)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으로 과부인 어머니가 못의 용과 관계하여 낳았다. 그는 늘 마를 캐서 팔았으므로 사람들이 ‘마둥이’ 곧 ‘서동(薯童)’이라 했다. (2) 서동은 경주로 가서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공주를 귀양 가게 하였다. 왕후가 공주에게 황금 한 말을 주며 귀양살이를 보냈는데 서동이 나타나 호위하고자 했다. 수행 중 몰래 정을 통한 후 공주는 서동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함께 백제에 이르러 살아갈 계책을 도모할 때 공주가 황금을 꺼내니 서동은 자신이 마를 캐던 곳에 그런 황금을 쌓아 놓았다고 했다. 공주가 부모님 궁전에 그것을 보내고자 하니 서동은 좋다고 했다.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知命) 법사에게 부탁하여 그의 신력으로 황금을 신라 궁중에 날라다 두었다. 서동은 이로 인해 인심을 얻고 왕위에 올랐다. (3)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로 가던 중에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경배하였다. 부인이 그곳에 큰 절을 세우고 싶다고 하니 왕이 이를 허락했다. 지명 법사가 연못을 하룻밤 신력으로 모두 메웠다. 미륵삼회를 법상으로 삼으면서 미륵사를 창건했다. 위의 줄거리에서 (1)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서동은 보통명사로 그가 신분을 속인 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음을 말해 주며, 연못용[池龍]은 몰락한 왕족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백제 위덕왕에서 혜왕으로 이어지던 시기에 나이가 어렸던 무왕이 익산으로 도피했던 사정이 설화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선화공주와의 혼인을 다룬 (2)는 쫓겨난 막내딸이 가난한 남자와 만나고, 지혜로 금을 알아보아 부자가 되고 부친과 재회한다는 민담 「내 복에 산다」 유형의 설화에 속한다. 「온달전」이나 무가 「삼공본풀이」와 같은 유형의 민담이 무왕의 설화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3)은 2009년에 발굴된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를 통해 미륵사의 창건주가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신라의 공주와 관련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미륵사 설화는 허구와 사실이 뒤섞이며 사찰 창건 설화로 재구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오대혁

관련자료

  • 마한신화
    도서 나경수 | 서울: 민속원 | 2009 상세정보
  • 백제 무왕과 서동설화의 역사성
    학술논문 강종원 | 백제학보 | 30 | 담양: 백제학회 | 2019 상세정보
  • 『삼국유사(三國遺事)』 무왕조(武王條)의 서동설화(薯童設話)에 대한 검토
    학술논문 김선숙 | 동아시아문화연구 | 30 | 서울: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2007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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